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한 뒤 기표소를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4·13 총선에서 야권(野圈) 분열 구도 속에서도 과반(過半)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의석을 얻어 사실상 참패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독선(獨善)적 행태에 대한 민심(民心)의 심판으로 해석된다.

공천을 둘러싼 집권 여당의 '막장 내전(內戰)'과 자기 사람을 국회에 심겠다는 박근혜 청와대의 '아집'에 분노한 보수 유권자들이 새로 탄생한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에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선거 전문가들은 "여권 핵심 지지층 상당수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선거를 각각 1번(새누리당)과 3번(국민의당) 혹은 3번과 1번에 하는 '교차투표' 양상을 보인 것 같다"고 했다. 여권의 전통적 수도권 텃밭인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분당 등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고전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약진(躍進)에 대해 당초에는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표 분산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빗나갔고 오히려 여당 지지층의 유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야권 지지층은 지역구 후보는 2번(더민주), 비례대표 후보는 3번을 선택하는 전략적 투표 양태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서울 서초구의 회사원 박모(56)씨는 "평생 보수 정당에만 투표를 해왔는데 이번에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을 보면서 그대로 용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비례대표 투표만큼은 국민의당에 표를 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인천 계양구의 주부 노모(65)씨는 "정당 투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에 했지만 지역구 후보는 기존 여야 후보와 비교해 국민의당 후보가 더 신선해 보여 한 표를 줬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영남권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새누리당의 선거 참패는 전체 253개 지역구의 절반 가까운 122석이 걸려 있는 수도권에서 확인됐다. 14일 1시 30분 개표 상황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수도권 확보 의석수는 30여석으로 예상된다. 2012년 19대 총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112석 가운데 43석, 야권연대를 한 민주통합당(더민주의 전신)과 통합진보당이 69석을 가져갔었다.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은 누구?]

새누리당은 당초 수도권 대부분의 지역구에 형성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인해 최소한 지난 총선보다는 많은 의석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김무성 대표는 올해 초까지 "수도권 약진을 중심으로 180석 이상을 얻겠다"는 호언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수도권 대패(大敗)와 그로 인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현실화 된 것이다.

새누리당 참패의 근본 원인은 야권 분열로 인해 총선 승리를 예단한 친박(親朴)계와 비박(非朴)계의 공천 내전(內戰)이 꼽힌다. 2월 초 한 친박계 인사가 김무성 대표에게 현역 의원 40여명의 물갈이를 요구했다는 '공천 살생부' 파동이 터진 데 이어,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의 김 대표를 겨냥한 막말 통화 녹취 파문이 불거졌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앞세운 친박계가 유승민·이재오·진영·류성걸 등 비박계 의원들을 대거 '컷오프(공천 배제)'시키고 이들이 탈당하면서 내전은 더 확산됐다. 김 대표가 '컷오프'된 비박계 의원 지역구에 투입된 '진박(眞朴)' 후보들 공천장에 도장을 찍어줄 수 없다는 '옥새 파동'까지 일어나 지지층의 이탈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여권의 아성인 대구·경북(TK)에서 벌어진 진박 마케팅에 대한 역풍도 수도권 민심에 영향을 줬다. 권성동 당 전략기획본부장은 "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 멋대로 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져 있었다"며 "선거 막판의 사죄와 반성 릴레이에 대해서도 유권자들은 진심이 담겨 있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야권은 물론 당내 비박계와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 중도층은 물론 핵심 지지층도 실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국대 가상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일관되게 언급했던 '국회 심판론'이 오히려 민심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야권의 '정권 심판론'에 밀린 것 같다"며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포용적 리더십을 원한다는 여론이 증명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작년 말 현실화된 야권 분열 사태가 거대 여당의 독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표심에 대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연구원 핵심 관계자는 "선거 직전 여권 지지층은 절반 가까이 떨어져 나갔다"며 "새누리당이 선거를 앞두고 해서는 안 될 행태를 지난 두 달간 모조리 했기 때문에 지는 게 당연한 선거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