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돋보기] 김광석 다시 부르기

    입력 : 2016.04.13 03:00

    김윤덕 문화부 차장
    김윤덕 문화부 차장
    그를 처음 본 건, 대학로가 연둣빛 새순에 물들던 이맘때였다. 옆 사람 어깨가 닿을 만큼 비좁은 소극장에 김광석은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목에 걸고 나타났다. 노래하다 말고, 파리를 쫓다 콧구멍으로 삼킨 이야기를 들려주며 키 작은 그가 배시시 웃었다. 나직이 읊조리는 듯하다 일순 솟구치던 그의 노래는 봄날 저녁 공기처럼 애잔했다.

    20대였던 그땐 김광석 노래가 좋은 줄 몰랐다. 퀴퀴한 곰팡내 나는 카페에서 고인(故人)이 된 김광석을 추모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서른즈음에'를 듣다 눈물을 찔끔거린 정도다. 김광석을 많이 들은 건 오히려 마흔이 넘어서다.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같은 노랫말이 서늘했다.

    386세대에게 김광석은 조용필 이상의 울림을 주는 뮤지션이다. 대구 방천시장 옆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는 하루 수백 명이 찾아오고, 벽에 그려진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짓는 사람도 많다. 올해 20주기를 맞아 서울 대학로에서 열리고 있는 '김광석을 보다' 전시엔 이제 사오십 중년이 된 80년대 학번들 발길이 끝없다. 아빠 등에 업힌 딸 서연이 사진도 저릿하지만, '녹두꽃'과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를 열창하던 스물세 살 김광석 영상 앞에서 그들은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메모광이던 김광석의 수첩에 코를 박고 읽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밤이어도 나는 사랑을 택할 것이다'라고 적은 생전의 메모가 뭉클하다.

    서른둘, 짧은 생과 그의 노래가 사람들 머릿속에 이토록 오래 둥지를 튼 이유는 뭘까. 만화가 박광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주 안주는 김광석 노래"라고 했다. 작가 구자형은 "꿈틀, 저녁 강 어둠 속에서 튀어오르는 물고기가 만져지는 듯한" 노래라고 썼다. 입대, 실연, 명퇴, 사별…. 보통사람들 삶이 켜켜이 쌓여 곰삭은 그의 노래를 인문학으로 풀어낸 철학자 김용석은 "사람들은 김광석 노래에서 자기 이야기를 발견했고, 그래서 위안받았으며, 삶을 성찰하는 화두를 얻었다"고 했다.

    늦은 오후, 전시장 밖엔 총선 로고송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픽미픽미, 무조건 나를 찍어달란다. 공중에 펄럭이는 선거 현수막이 하회탈처럼 웃고 있는 김광석 포스터와 기묘한 대비를 이뤘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지탄을 받으면서도 '나 아니면 안 된다'며 다시 출사표를 던진 그들은 왜 아직 많은 사람이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소주잔을 기울이는지 알고 있을까. '아니면 말고' 식 날림 공약들을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상대 당(黨)에 그저 조롱과 모멸의 말만 쏟아내는 정치꾼들에게 나의 한 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생각했다.

    일기 쓰듯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곡을 썼다는 김광석처럼, 염치를 아는 정치를 만나기가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인생 이등병들에게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어깨를 토닥이고 위로해줄 정치인을 소망하기란 영영 헛된 꿈인지.

    그가 몹시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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