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성남중앙시장의 침구류 가게 모습. 이 시장엔 2006년 1월 불이 나 2개 동이 전소(全燒)하고 1개 동이 철거됐으며, 1개 동은 10년째 안전진단 E등급(붕괴 위험)인 재난 위험 시설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상인들은 임시 점포를 만들어 장사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10일 경기 성남시 성남중앙시장. 도로변으로 분식점과 보석·옷가게 등이 늘어서 있고, 1층 안쪽에는 이불 가게 등이 영업 중이었다. 얼핏 봐서는 평범한 전통 시장이었다. 하지만 2층으로 올라가자 폐허를 방불케 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낡은 콘크리트 천장을 임시 철골 지지대들이 받치고 있었고, 벽은 곳곳이 패어 있었다.

1971년에 지어진 이 시장은 2006년 큰 화재로 전체 5개 동 중 3개 동이 불타거나 철거됐다. 현재 영업 중인 동도 '붕괴 위험이 있어 사용해서는 안 되는 시설'을 의미하는 안전 진단 E등급을 받았다.

성남시는 매년 5~6차례씩 상인들에게 철수 요청 공문을 보내고 있지만, 일부 상인은 생계를 이유로 나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시에 '사고가 나도 스스로 책임을 지고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제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성남중앙시장은 내년 1월 재건축이 예정돼 있지만 지금도 20여개 점포가 여전히 영업 중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점포주 상인들이 단체로 버티고 있어 재건축 때까지는 이대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전국 곳곳에는 성남중앙시장처럼 재난이 우려되는 건물이 널려 있다. 11일 국민안전처가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재난 위험 시설 현황(2015년 말 기준)' 자료에 따르면 안전 진단 D등급은 801개, E등급은 58개로 총 859개였다. 이 중 아파트 등 민간 시설이 80.3%(690개)에 이른다. D등급은 당장 보수·보강을 해야 할 건물, E등급은 붕괴 우려가 있는 시설을 뜻한다.

하지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민간 위험 시설을 철거하거나 보수·보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위험 시설의 상당수는 규모가 작아 법이 정한 정기 안전 진단 대상이 아닌 데다 지자체장이 긴급 대피 명령 등을 내려도 건물주나 상인이 '재산권 침해'나 '생계 곤란' 등을 들어 거부하면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사실상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은 지 36년 된 경기 광명시 서울연립주택도 작년 5월 안전 진단 E등급을 받았다. 광명시는 그 직후 주민들에게 긴급대피 명령을 내려 60여 가구가 이주했다. 그러나 남은 2가구는 "시세대로 집값을 보상해 줘야 나가겠다"며 버티고 있다. 광명시 관계자는 "현행법으로는 거주민이 버티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거의 없다"며 "강제 철거가 가능하지만 그 경우 자칫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했다.

1976년 입주한 서울 관악구 조원동 강남아파트는 건물 곳곳이 패고 금이 가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와 오래된 페인트 부스러기 등이 떨어져 아파트 단지 옆 보행로 200여m에 철골 안전 지붕이 설치돼 있을 정도이다. 이 아파트는 1996년부터 안전 진단 D등급을 받았고, 지난 1월엔 한 가구에서 화장실 벽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22년째 재건축이 표류하면서 보수·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구청 예산으로 민간 아파트를 보수해 줄 수도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현행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연면적 3만㎡ 이상이거나 16층 이상인 건물, 연면적 5000㎡ 이상의 다중 이용 시설 등은 정기적으로 안전 진단을 받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과태료 등을 부과한다. 그러나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15층 이하 소규모 아파트나 상가 등은 지자체 공무원이 육안으로 살펴보고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김도년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붕괴 위험이 있는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안전 진단 세부 기준이 하루빨리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