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7일(현지 시각) "아버지가 설립한 역외(域外) 신탁 '블레어모어 홀딩스' 지분을 13년간 보유했고, 총리 취임 직전 매각해 1만9000파운드(약 3100만원)의 차익을 남겼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 지도층의 재산 해외 도피·탈세 정황 등을 담은 일명 '파나마 페이퍼스'가 공개된 지 3일 만이다. 노동당 등 야권은 "캐머런 총리가 숨기려 했던 비밀을 마침내 실토했다"며 "총리에서 당장 사퇴하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날 오후 영국 ITV 인터뷰에서 "지난 1997년 아내와 함께 블레어모어 홀딩스 지분 1만2497파운드(약 2000만원)어치를 사들였고, 2010년 1월 3만1500파운드(약 5100만원)에 팔았다"고 공개했다. 그는 "기득권을 가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모든 걸 처분하려 했다"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는 2010년 5월 총선에서 승리, 총리에 취임했다. 그는 "지분 매각 후 소득세를 모두 냈고, 자본이득세는 면세 한도액 미만이어서 내지 않았다"고 했다. 캐머런 총리는 "현재 어떤 지분이나 역외 신탁·펀드도 소유하지 않고 있다"며 "나는 숨길 것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조만간 소득신고서도 공개할 계획이다. 그의 아버지 이언 캐머런(2010년 9월 사망)이 설립한 블레어모어 홀딩스에 대해 "매년 경영 현황을 공개했고 회계 감사도 받았다"며 탈세를 위한 회사라는 건 '완벽한 오해'라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2012년 아일랜드로 옮겼다.

톰 왓슨 노동당 부대표는 "캐머런 총리는 전부터 탈세를 위해 역외 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잘못됐다'고 비판했다"며 "그렇다면 이제 그가 사퇴할 차례"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를 '위선자'라고도 했다. 스코틀랜드독립당(SNP) 경제 담당 대변인 스튜어트 호시 의원도 "총리 입에서 놀라운 자백이 나왔다"며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가 없었다면 국민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캐머런 총리가 '뒷북 해명'에 나선 것이 논란을 키운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는 나흘 동안 다섯 번의 해명을 내놓은 끝에 과거 지분 보유 사실을 인정했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지난 4일 "이언 캐머런이 1982년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를 통해 '블레어모어 홀딩스'를 설립했고, 30년 동안 한 번도 영국에 세금을 안 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캐머런 총리 측은 "(아버지와 관련된) 개인적인 사안"(4일), "(나와 가족은) 현재 역외 신탁·펀드 등에 주식·지분이 전혀 없다"(5일), "미래에도 역외 펀드 등에서 이득을 얻는 일은 없을 것"(6일)이라고만 해명했다. 하지만 언론과 야권이 "과거에도 아버지 펀드와 관련이 없었느냐"고 추궁하자 이날 과거를 공개했다. BBC 정치 담당 기자 레언 왓슨은 "캐머런 총리는 적어도 법적으론 문제는 없는 것 같다"며 "하지만 정치적으론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했다. 캐머런의 어머니와 3명의 형·누나가 역외 펀드 지분을 보유했는지 등도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영국 국민의 도덕적 잣대가 캐머런의 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그의 정치적 앞날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