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국무총리는 6일 20대 공무원 시험 응시생이 정부 서울 청사에 침입해 합격자 명단을 조작한 사건과 관련해 "국가 핵심 시설 경비와 방호, 전산 장비 보안, 당직 근무 등 모든 보안 관리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성렬 행정자치부 차관도 기자회견을 갖고 "청사 보안 강화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보안 전반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4년 전인 2012년 우울증을 앓던 60대 남성이 위조한 공무원증으로 청사에 잠입해 18층 사무실에 불을 지르고 투신했을 때도 정부는 철석같이 재발 방지를 다짐했다.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는 "국가 주요 시설에 대한 특별 점검을 통해 보안·안전 관리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행자부가 나서서 대대적인 보안 시스템 개편 작업도 벌였다.
그러나 서울 한복판에 있는 국가 최상급 보안 시설인 정부 서울 청사는 이런 공언이 무안하게 허무하게 뚫렸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용의자는 청사 1층 체력단련실에서 훔친 공무원 신분증을 이용해 잠입에 성공했다. 또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해킹 프로그램으로 정부 업무용 PC의 보안 시스템을 뚫어버렸고, 9시간 동안이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사무실에 머물렀다. 정부 시설을 파괴하려는 테러 요원이나 국가 기밀을 빼내려는 스파이가 들어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피해가 날 뻔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허술한 보안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려면 경비·보안 지휘 계통의 책임을 따져 엄정하게 문책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세 차례 9시간 동안 정부 PC 조작
올해 국가직 지역 인재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송모(26)씨는 5차례에 걸쳐 정부 서울 청사에 몰래 들어갔고, 이 중 세 차례는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있는 PC 2대에 침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황서종 인사혁신처 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송씨가 24일(오후 11시 35분~11시 58분)과 26일(오후 9시 2분~이튿날 오전 5시 35분)에 채용관리과 A주무관의 PC에 로그인했고, 27일 오전 2시 2분부터 오전 5시 14분까지는 같은 사무실의 상급자인 B사무관 PC까지 두 대에 동시에 접속해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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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는 두 대의 PC에 있는 자신의 필기시험 점수 기록을 동일하게 변경하고, 합격자 명단에도 자신의 이름을 추가했다. 그는 자신의 필기 점수인 45점을 합격선인 75점으로 바꿔놨다. 앞서 송씨는 청사 1층에 있는 체력단련실에서 공무원 신분증 3개를 훔쳐 출입문을 통과하는 데 썼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곳의 옷 보관함엔 열쇠가 없어 도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송씨는 인사혁신처 사무실의 잠금장치(도어록)도 뚫고 들어갔다. 경찰은 송씨가 다른 경로로 비밀번호를 입수했거나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송씨를 상대로 조사 중이다.
◇인터넷 유통 프로그램으로 보안망 뚫어
송씨는 인사혁신처 직원의 PC에 걸린 암호도 쉽게 해제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암호 해제 프로그램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평소 '세계 1위 전자 정부'를 자처했던 정부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송씨가 비밀번호를 푸는 프로그램과 운영 체제를 USB(휴대용 저장장치)에 담아 컴퓨터에 연결한 다음 패스워드 보안 시스템을 무력화한 것으로 추정한다. 국가정보원은 공무원 PC에 4단계 암호(부팅 단계, 윈도 운영 체제, 화면 보호기, 중요 문서)를 설정하도록 보안 지침을 마련해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보안 장치는 전문 컴퓨터 지식도 없는 20대 대학생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공직 사회에 보안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책임을 묻는 풍토를 조성해야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공시(公試)' 수차례 낙방이 부른 범죄
제주의 한 대학 졸업반인 송씨는 2~3년 전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수차례 낙방했던 그는 "지난달 5일 치러진 지역 인재 7급 필기시험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절박한 마음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송씨는 이날 공(公)전자기록을 마음대로 바꾼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한편 인사혁신처는 이날 예정대로 송씨가 응시했던 7급 지역 인재 공무원 필기시험 합격자 132명을 사이버국가고시센터(gosi.go.kr)에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