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조미료' 미원(味元)을 만든 임대홍(96) 대상그룹 창업회장이 지난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대상그룹은 "임 창업회장이 5일 오후 8시 57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숨을 거뒀다"며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장례를 치를 계획"이라고 6일 밝혔다. 외부 조문을 받지 않고 조화도 돌려보내고 있다.
1920년 전북 정읍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한국 조미료 시장의 새 지평을 연 1세대 기업인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조미료는 일본의 '아지노모토(味の素)'였다. 이리농림학교를 졸업하고 피혁 사업을 하던 임 창업회장은 밀수된 아지노모토가 판치는 모습을 보고 조미료 사업에 도전했다.
감칠맛을 내는 성분인 글루탐산의 제조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1955년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다. 현지 신문에 '조미료 제조 기술자 특별 우대' 광고를 내고 찾아오는 전문가 수십 명을 만나 제조 노하우를 터득했다. 부산으로 돌아온 그는 1956년 동아화성공업을 설립하고 '미원'을 만들었다.
순수 국내 자본과 기술로 만든 미원은 주부들 사이에서 '마법의 조미료'로 불렸다. 도매상들은 공장 앞에 줄을 서서 물건을 사갔다. 1960년대 미원 선물 세트는 최고의 명절 선물이었다. 임 창업회장은 조미료 시장에 진출한 삼성그룹의 거센 도전에 맞서 1위를 지켰다.
그는 '실험광(狂)'이었다. 미원 제조 공법을 처음 개발할 때에는 100일간 실험실에 파묻혀 화공 약품을 다뤄 손이 갈라 터졌다. 양복 상의에선 늘 약품 냄새가 났고, 독한 화학 약품에 뚫린 구멍투성이 옷을 입었다. 계열사를 방문할 때는 생산 시설이나 실험실을 먼저 둘러봤고, 실험 중 누군가 들어오면 시험관 속 물질을 불쑥 내밀고 시식을 권하기도 했다. 그는 퇴근 후에도 집에 마련한 실험실로 들어가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대상 관계자는 "직접 끓이고 맛보면서 기술을 체득하기 전에는 아무리 사업 전망이 좋아도 손을 대지 않았던 분"이라고 말했다.
임 창업회장은 대외 활동이나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다. 점심은 설렁탕을 주문해 먹었고, 퇴근 때는 집무실을 살짝 빠져나가 비서진을 당황하게 했다. 이 때문에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원도 많았다고 한다. 종묘·비원·경복궁 등 고궁이나 도심을 산책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고인은 양복 세 벌, 구두 두 켤레 이상을 지닌 적이 없을 만큼 검소했다. 재계의 직책도 맡지 않았다. 다만 종친 일에는 발 벗고 나서 임씨(林氏) 대동회장을 맡았다. 1987년 장남 임창욱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뒤 자택 실험실에서 전통 장류(醬類) 연구에 몰두했다.
대상그룹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임 창업회장의 경영 철학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업이 되려면 무엇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밝고 건강한 사회, 행복하고 희망찬 사회를 건설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1년 사재를 출연해 대상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식품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2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유족은 임창욱 대상 명예회장과 임성욱 세원그룹 회장, 딸 임경화씨와 사위 김종의 백광산업 회장, 손녀 임세령·임상민 대상 상무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은 8일 오전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