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로 문제아 데려간 '호통 판사'

입력 2016.04.05 03:00 | 수정 2016.04.05 08:34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비행청소년의 아버지로 유명… '쉼터' 소년범들과 라오스 봉사
봉사 학생 "처음으로 보람 느껴"

지난달 31일 라오스 중북부 힌팃 초등학교에서 천종호 부장판사가 건물 벽에 페인트칠하는 현지인 학생을 어깨에 태우고 있다.
지난달 31일 라오스 중북부 힌팃 초등학교에서 천종호 부장판사가 건물 벽에 페인트칠하는 현지인 학생을 어깨에 태우고 있다. /하나투어 제공
지난달 31일 오전 10시 라오스 중북부 시골의 힌팃 초등학교. 뙤약볕 아래에서 우리나라 청소년 10여 명이 거뭇해진 학교 외벽을 하얀 페인트로 칠하고 있었다. 섭씨 35도를 넘는 더위 속에 "더워서 못 하겠어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곧장 중년 남성이 굵은 호통으로 제압했다.

"아이들 도와주려고 여기까지 와놓고 포기하고 놀면, 기다리는 꼬마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어!"

호통의 주인공은 천종호(51)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다. 소년보호재판 법정에서 소년범이나 그 가족을 엄한 목소리로 꾸짖어 '호통 판사'로 널리 알려졌다. 그의 또 다른 별명은 '비행청소년의 아버지'. 평소 비행청소년 교화에 관심이 많아 이들을 위한 청소년회복센터(쉼터)를 201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웠고, 정규 학교에서 교육받도록 연결해줬다. 호통이 채찍질이라면 후속 조치는 당근인 셈이다.

이번에 라오스를 찾은 소년·소녀들은 천 판사가 전국에 세운 16개 쉼터에서 지내고 있다. 보살펴줄 부모나 가족이 없는 비행청소년들이 보호관찰 처분을 받으면 지내는 곳이 쉼터다. 천 판사는 '재범 가능성을 낮추겠다'며 이들을 라오스 시골까지 데려왔다. 그는 "'모범 비행청소년'들 대신 가족이 없거나 어른의 돌봄을 받기 어려운 아이들부터 봉사단에 포함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라오스에 온 진수(17·가명)도 경찰서만 세 번 들락거렸다. 진수는 "처음 물건을 훔쳤을 때 '기소유예'를 받고 나니 경찰이 무섭지 않았었다"고 털어놨다. 진수는 천 판사로부터 "또 그럴 거면 그냥 소년원 보내야겠다"는 호통을 듣고 "정신 차리겠다"고 약속한 뒤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그를 포함해 라오스에 온 16명 중 대부분이 천 판사의 꾸지람을 들었다. 이들은 폭행, 무면허 오토바이 운전 등 상대적으로 무겁지 않은 죄를 지었고 천 판사가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고 판단해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보호처분을 받은 청소년은 재비행 없이 착실히 생활하면 전과를 남기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청소년들은 힌팃 학교에서 5시간 동안 잡초를 제거하고 페인트칠을 했다. 쉬는 시간엔 현지 학생 170여 명과 장구를 만들어 아리랑을 부르며 놀거나 운동장에서 비행기를 날렸다.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던 민주(16·가명)는 "페인트칠할 때 옆에서 본 꼬마들의 미소 때문에 보람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우리가 편하게 살아왔구나"라고 말하는 소년도 있었다. 천 판사는 "사랑을 받거나 줘 본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이 '봉사'와 '나눔'을 체험하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청소년 재판을 맡은 지 6년째인 천 판사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를 돕겠다는 기업, 사회단체도 늘고 있다. 이번 라오스 여행도 하나투어 사회공헌팀이 후원하고, 국제구호단체 월드쉐어가 현지 활동을 도왔다. 천 판사는 비행청소년과 멘토를 1:1로 연결한 뒤 도보 여행을 보내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그는 "비행 청소년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 아동 학대를 겪은 피해자"라며 "이런 아이들이 커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아동 학대를 막는 일에도 나서려고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듣던 진수가 입을 열었다. "사실상 부모님으로부터 버려진 저를 판사님과 여러분들이 후원해주셨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나중에 취업하면 여기 아이들 같은 친구들에게 후원이란 걸 해보고 싶습니다."
[나라 정보]
라오스는 어떤 나라?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