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샤프 농락한 '능구렁이'… 값 2배 불러 코 꿴후 4조원 후려쳐

조선일보
입력 2016.04.01 03:00 | 수정 2016.04.01 08:56

[대만 훙하이 회장의 기막힌 교섭술]

경쟁자 물리친 후엔 기업 實査, 약점 찾은 후 "속았다, 손떼겠다"
샤프와 주채권은행 동시에 압박… 한달만에 3조8000억원이나 깎아

'산전수전 다 겪은 (대만 훙하이의) 궈타이밍(郭台銘·66) 회장에게 농락당했다' '샤프, 수세에 놓였던 1개월… 훙하이의 교섭술에 농락당해'….

31일 닛케이·산케이 등 일본 언론은 일제히 '농락'이라는 단어를 쓰며 대만 훙하이(鴻海)그룹이 전날 샤프를 3조9000억원(3888억엔)에 인수한 것에 대해 탄식했다. 매각 가격이 한 달 전 훙하이와 샤프가 잠정 합의한 액수의 절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도 "당초 일본 민관 투자 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가 인수할 것으로 점쳐졌던 샤프 인수전이 훙하이로 기울고 또 예상 밖의 헐값에 팔린 것은 궈 회장의 끈질긴 집념 때문이었다"고 했다.

궈 회장은 일단 상대에게 거액의 인수 금액을 제시해 자신에게 목을 매게 한 뒤 협상 과정에서 상대의 결정적 약점을 찾아내 반격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후 가격을 후려친 뒤 속전속결로 끝냈다.

궈타이밍 회장 사진
당초 궈 회장은 샤프 측에 인수 금액 7000억엔(약 7조7000억원·당시 환율 기준)을 제시했다. 다른 경쟁자였던 INCJ가 제시한 3000억엔의 두 배가 넘었다. 2월 25일 샤프 이사회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때부터 훙하이 태도가 돌변했다. 이미 자사 간부 100여 명을 오사카 샤프 본사에 파견해 모든 재무 상황을 속속들이 들여다본 상태였다. 이들은 사프 회계 장부에서 미래에 거액의 채무로 바뀔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찾아냈다. 궈 회장은 "샤프가 자신을 속였다"며 인수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했다. 유일한 대안이었던 INCJ는 이미 샤프 인수전에서 손을 떼려는 상태였다. 샤프 측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협상은 궈 회장 의도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주(主)채권 은행인 미즈호와 미쓰비시도쿄UFJ에 "당신들이 인수 가격을 낮추도록 샤프를 설득하지 않으면 3월 말 만기 5100억엔의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깜짝 놀란 두 은행은 샤프를 설득하는 한편, 임원들을 직접 대만으로 보내 훙하이와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궈 회장은 또 샤프의 사측과 직원들에게 각각 강온 양면책을 구사했다. 협상 과정에서 인수 금액이 7000억엔에서 이미 4890억엔까지 낮아졌지만, 훙하이는 샤프 측에 다시 2000억엔을 깎겠다고 일방 통보했다. 샤프와 두 은행은 "덤핑이나 다름없다"며 거부했지만 궈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궈 회장은 샤프의 동남아 거점인 태국을 방문해 샤프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다음 날 일본 샤프 공장을 찾아 현장 직원들에게 "훙하이만이 샤프를 살릴 수 있다"고 설파했다.

3월 25일 결국 두 은행은 훙하이가 요구한 2000억엔이 아닌 1000억엔만 깎아주는 대신 샤프의 5100억엔 채무 만기를 연장해주고 3000억엔 신규 대출까지 허용하며 사실상 백기 투항했다. 창업 40년 만에 훙하이를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 생산 업체로 키워낸 야심가 궈 회장의 집념이 또 한 번 승리를 이끌어내는 순간이었다.

1974년 스물넷에 직원 10명으로 회사를 차려 TV용 플라스틱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던 그는 현재 자산 6조2000억원의 대만 최대 갑부다. 거침없는 언행과 공격적인 경영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임원에게 매년 30% 이상 실적 향상을 요구한다. 자신은 1대만달러(36원) 연봉만 받고 임원 성과급은 자신이 받는 배당금에서 사비로 지급한다. 2005년 아내와 사별한 뒤 2008년 24세 어린 무용가와 재혼했다. 결혼식 하객 앞에서 푸시업 30개를 해보이며 체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예순넷이던 재작년엔 딸도 얻었다. 하루 16시간 일하고, 밤 12시 간부들을 집합시켜 회의를 열기도 한다.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해온 인재들이 신경 쇠약으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궈 회장은 또 반(反)삼성, 반한파다. 과거 "일본 기업과 손잡고 삼성전자를 꺾겠다" "일본인은 절대 뒤에서 칼을 꽂지 않지만 가오리방쯔(高麗棒子·중국인이 한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는 다르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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