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형제(兄弟)의 운명은 빛과 그림자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형은 세계대회에서 수차례 메달을 딴 정상급 스포츠 선수로 성장했다. 국제경기 때마다 나라를 대표해 싸웠고, 부모는 그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반면 다섯 살 아래 동생은 집안의 골칫거리였다. 이슬람 급진주의에 빠져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테러 집단에 가담했다. 식구들과 연락도 끊어 버렸다. 가족들은 최근 뉴스를 통해 3년여 만에 그의 소식을 접했다. 지난 22일 최소 300여명 이상 사상자를 낸 벨기에 브뤼셀 폭탄 테러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자벤템 국제공항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브뤼셀 자벤템 공항 테러범 나짐 라크라위(24)와 그의 형 무라드 라크라위(29)의 엇갈린 운명은 데일리메일 등 해외 언론에서도 화제로 다뤘다. 라크라위 형제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모로코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이슬람식 전통을 강요하는 대신 일반 벨기에 가정처럼 서양식으로 여섯 자녀를 키웠다.
그러나 형제의 성장 과정은 달랐다. 형 무라드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벨기에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로 활약했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태권도 54㎏급에 출전해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영국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무라드가 딴 세 번째 국제대회 메달이었다. 무라드는 가족이나 친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평범한 20대 청년처럼 트위터 등 SNS에 국제대회 참석차 방문한 외국 사진과 대회 장면을 올리고, 사촌 동생들과 심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다.
동생 나짐은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났다. 마약을 복용하거나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이슬람 과격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더 타임스는 나짐을 "광적인 이상주의자이자 철저하게 훈련받은 전사(戰士)"라고 했다. 나짐이 극단주의 사상에 빠져든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가족에게 느낀 상대적 소외감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더 타임스는 "나짐이 가족과 절연했다"고 보도했다. 나짐의 아버지는 경찰 조사에서 "3년간 아들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가족들은 극단주의에 빠진 나짐을 수치스러워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짐 때문에 무라드가 운동선수로서의 경력에 타격을 입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나짐은 2013년 시리아에 다녀온 이후 본격적으로 테러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작년 11월 파리 테러 때 사용된 자살 폭탄 조끼에서 나짐의 지문이 발견된 점을 들어 그가 당시 폭탄 제조를 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나짐은 브뤼셀의 가톨릭계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경찰은 나짐이 '수피아네 카얄'이라는 가명으로 빌린 방에서 파리 테러에 사용됐던 폭탄과 동일한 트라이아세톤 트라이페록사이드(TATP)를 발견했다. TATP는 IS가 즐겨 쓰는 폭탄으로, 위력이 TNT의 80%에 달해 '사탄의 어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편 23일 터키 정부는 브뤼셀 자벤템 공항에서 자폭 테러를 한 이브라힘 바크라위를 지난해 6월 시리아 국경과 가까운 가지안테프에서 체포해 벨기에로 강제 추방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바크라위의 의사에 따라 네덜란드를 경유해 본국인 벨기에로 그를 돌려보내면서 벨기에와 네덜란드 측에 '테러리스트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음에도 벨기에 당국은 그가 테러범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