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명단 결정을 놓고 김종인 대표와 운동권 출신 주류(主流) 세력들이 20일 충돌했다. 전문가·비(非)운동권 중심으로 야당을 재편하려는 김종인 대표 시도에 대한 야당 주류의 반발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더민주는 당초 이날 중앙위원회를 열어 비대위가 결정한 비례대표 명단과 순번을 확정하려 했다. 비례대표 명단을 당선 가능성을 기준으로 A·B·C 3개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에 대한 중앙위원들의 투표로 추인받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일부 중앙위원들은 "비례후보를 3개 그룹으로 나눈 것은 중앙위 투표로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도록 한 당헌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웃었는데… 반발 부딪힌 두 사람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왼쪽) 대표와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이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앙위 회의에서 만나 악수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주도해 만든 비례대표 후보 명단은 이날 중앙위원 다수의 반발로 추인이 연기됐다.

[더민주, 김종인 불참 속 비대위 시작]

더민주의 이날 충돌은 형식적으로는 비례대표 선출 방법을 놓고 벌어졌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김종인 비대위가 선정한 비례대표 후보들 면면에 대한 반발이었다. 당선권인 A그룹(1~10번)에는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김성수 당 대변인, 김숙희 서울시 의사회장, 문미옥 전 한국과학기술인지원센터 기획정책실장,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 등을 배치했다. 이 밖에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 양정숙 변호사, 조희금 대구대 교수, 최운열 서강대 교수도 포함됐다. 이 중 1번(박경미), 2번(김종인), 6번(최운열)은 김종인 대표에게 주어진 '3명 지명권'에 따라 번호가 부여됐지만, 나머지 후보들은 중앙위에서 투표로 번호를 정하게 된다.

이날 명단에서 운동권 출신들은 당선이 불확실한 C그룹으로 밀려났다. 야당 관계자는 "기존 야당 비례대표 공천의 핵심이었던 운동권 출신들이 전멸했다"고 했다. 4년 전 '정체성'을 내세워 1번부터 20번까지 운동권을 전면 배치했던 것과 정반대 공천이었다. 김종인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운동권 출신이 당의 정체성이라면 애초에 나를 데려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민주는 21일 다시 중앙위를 열기로 했다. 비대위는 비례대표 명단의 추인을 요구할 방침이지만 중앙위는 일부 순번 변경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중앙위가 비례대표 명단을 계속 거부한다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거취에 대해 고민하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결과는 뻔한 것 아니냐"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심야 지도부 회의에서도 "비례대표 명단을 수정하면 대표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위가 21일에도 비례 결정을 거부할 경우 '김종인 비대위'는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야당 고위 관계자는 "일부 순번 변경을 하는 선에서 양측이 타협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