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계산'은 이겨도, 인간의 꿈 따라할 순 없어"

입력 2016.03.21 03:00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알파고도 경기 질 때 아쉬워했다? 우리가 감정이입해 느낀 것일 뿐
인간이 AI에 의존할까 우려돼… 내년 출간될 신작 주제는 自覺夢"
과거 인공지능 소설 '뇌' 쓰기도

지난 18일 오후 프랑스 파리 16구(區)에 있는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5)의 아파트. 거실 탁자 위에는 바둑판보다 조금 넓은 크기의 체스판이 놓여 있었다. 여기저기 말들이 옮겨 다니다 만 흔적이 있었다. 그는 "아들과 두다가 미처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둔 것"이라고 했다.

베르베르는 소설에서 체스를 즐겨 인용한다. 최근작 '제3인류'에는 7각(角) 체스판이 등장하기도 한다. 10여 년 전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AI)과의 체스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이 두뇌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의 스릴러 '뇌(腦)'를 쓰기도 했다. 소설은 인간이 승리를 거뒀지만 경기 직후 살해당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국을 보며 새삼스레 이 작품을 떠올린 이들이 꽤 있었다. 인간이 무릎을 꿇은 대국 결과에 아쉬워한 사람도 많다.

베르베르는 "체스나 바둑이나 가능한 경우의 수를 거의 다 감안하는 컴퓨터와 '계산 대결'에서 인간은 이길 수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이 컴퓨터를 활용해 체스와 바둑 실력을 높이고, 일기예보나 교통 흐름 제어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는 "AI 기술을 활용해 젊을 때 기억을 백업해놓았다가 나이가 들어서 치매가 오면 백업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술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파리 16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집 서재에는 3인용 체스판도 있었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집필실에선 바둑도 가끔 둔다. 그는 “AI 덕분에 내 체스와 바둑 실력이 좋아질 것 같다”며 웃었다.
파리 16구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집 서재에는 3인용 체스판도 있었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집필실에선 바둑도 가끔 둔다. 그는 “AI 덕분에 내 체스와 바둑 실력이 좋아질 것 같다”며 웃었다. /파리=신동흔 기자

베르베르는 수많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앞으로 AI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을 우려했다. 특히 AI에는 부재(不在)하는 감정이나 공감(共感) 능력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는 "예컨대 주식 매매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할 경우,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패닉'까지 고려하게 만들 수는 없다"고 했다. 이른바 인간 삶의 여러 가지 다른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프로그램 매매 등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국가 간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 과연 기계에 한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있겠냐"고도 했다. AI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AI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었다. 의사 결정 능력은 인간의 전문적 영역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길 찾는 것도 귀찮아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 같기도 했다.

그는 "인간은 지능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꿈이나 광기(狂氣), 웃음도 갖고 있다"면서 "고도의 연산 장치인 AI의 기능은 인간 뇌의 일부 기능을 모방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인간 뇌의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그의 작품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가 상상하는 것처럼 AI가 자아를 갖거나, 신경증 증상이나 광기 같은 것을 보일 가능성은 없을까. 이세돌이 승리한 제4국에서 '알파고는 포기한다(AlphaGo resigns)' 메시지를 보며 '컴퓨터가 사람처럼 패배를 아쉬워한다'는 느낌을 받은 이도 많았다. 베르베르는 "그런 느낌은 인간이 AI에 우리의 자아를 투사해 감정을 가진 존재처럼 느낀 것일 뿐"이라며 "알파고에 자신의 인격을 투사할 정도의 '감정이입' 능력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필립 K. 딕의 소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분할 때 아기가 죽는 장면에 아픔을 느끼는지 여부가 인간과 비(非)인간을 구분 짓는 기준"이라는 것이다.

꿈 역시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는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꿈'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 국내 출간 예정인 그의 신작(新作) '6번째 잠'은 신경생리학의 최신 이론을 총동원해 사람이 스스로 인식하면서 꾸는 '자각몽(lucid dream)' 상태에서의 모험을 다룬다. 그는 "우리가 꿈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된다면 뇌에서 새로운 미지의 영역이 열리는 것"이라며 "꿈이야말로 AI가 따라올 수 없는 지점"이라고 했다.

베르베르는 "우리는 이미 SF(과학 소설)적인 환경으로 진입했기 때문에 새로운 윤리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특히 "못을 박는 데 쓰는 망치를 살해 도구로 사용했다고 해서 망치를 탓할 수는 없으며, 결국은 AI를 다루는 인간의 윤리 문제가 대두될 것"이라고 했다. "기술과 첨단 과학이 누구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선(善)과 악(惡)은 끊임없이 대결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인간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것. '개미'에서 시작해 최근작 '제3인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학적 발견을 엮어내는 그가 과학자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고, '과학 소설'을 쓰는 길을 택한 이유처럼 들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프랑스 작가다. 주간지에서 과학기자로 일하다가 1991년 데뷔작 ‘개미’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전업작가로 전향했다.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파피용’, ‘제3인류’ 등 작품 대부분은 기발한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모험소설이다. 교보문고는 최근 2006~2015년 소설 판매량 조사에서 베르베르의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키워드 정보]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간이 AI에 의존할까 우려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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