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오는 봄을 조용히 노래하다

입력 2016.03.21 03:00

시집 두권 낸 시조 시인 홍성란 '바람의…' 여유로운 풍류 보여
'소풍' 오늘의 사랑 담은 短時調

홍성란 시인 사진
/책만드는집 제공

홍성란(58·사진) 시조 시인이 시집 두 권을 나란히 냈다. 올해 제1회 조운 문학상 수상시집 '바람의 머리카락'(고요아침)과 단시조 60편을 묶은 시집 '소풍'(책만드는집)을 출간했다. 홍 시인은 지난 27년 동안 단시조·연시조·사설시조에 걸쳐 골고루 수작을 발표해 현대 시조를 대표해 왔다. 시조 시인으로도 활동해 온 신흥사 조실(祖室) 무산(霧山) 스님은 홍성란 시인을 가리켜 "황진이의 시심을 전수받은 검인상주(劍人上走), 칼날 위를 달리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시집 '바람의 머리카락'의 첫머리는 단시조 '어린 봄'이 장식했다. '새는 어디서 오는 걸까/ 버들강아지 낮은 물가// 붉은머리오목눈이 쓰다듬는 눈을 하고// 물 건너/ 보기만 하네 하느님도 꼼짝없이'.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몸길이 13㎝인 뱁새의 정식 명칭이다. 시인은 그처럼 작고 여린 새가 물가에 서서 물 건너를 바라보는 장면을 포착해 봄이 오는 풍경을 묘사한다. 뱁새의 시선은 봄을 쓰다듬듯 부드럽다. 신(神)이 손대지 않아도 작은 새의 여린 시선을 통해 봄은 시간의 강물을 건너 세상 속으로 다가와 퍼진다. 새의 시선, 그 새를 보는 시인의 시선 혹은 뱁새처럼 조그마한 시인의 시선, 새와 시인의 시선 너머를 포함해 모든 풍경을 내려다보는 창조주의 시선이 짧은 시 한 편에 다 겹쳐서 우주 전체가 봄을 맞이하는 순간을 조용하게 예찬한다.

홍 시인의 시조 '바람의 머리카락'은 '날개도 없이 허공을 나는 거미 한 마리'에 시인의 삶을 투영한 뒤 '매나니 거칠 것 없이 훌훌, 혈혈단신 떠나데'라며 여유롭게 풀어주는 풍류(風流)를 보여줬다. 매나니는 '그저'란 뜻이다. 시인은 시집을 내며 "세상에 와 그러모은 그 어떤 것도 천 길 강물에 스미는 봄눈 같은 것"이라며 공(空)의 정신을 지향했다.

홍 시인의 단시조 선집 '소풍'은 전통 문학인 시조도 현대적 감각의 연애를 노래할 수 있음을 자주 보여줬다. 시조 '잔물결'은 봄꽃이 피고 지듯, 만남과 이별도 하나인 사랑을 그리면서 더 크게 보면 시간의 잔물결을 거스를 수 없는 인연의 애틋함을 노래했다. '진달래 피었구나/ 너랑 보는 진달래// 몇 번이나 너랑 같이 피는 꽃 보겠느냐// 물떼새/ 발목 적시러 잔물결 밀려온다'.

그런가 하면 시인은 '사랑이란 두 사람이 같은 곳을 보는 것'이란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말을 비웃으며 시조 '철길에서'를 썼다. '둘이 한곳을/ 바라보는 게 사랑이라면// 글쎄 나는 싫겠다/ 나란히 가기만 한다면// 엇갈린 한순간이라도 좋으리/ 만나기만 한다면'. 앞만 보고 걷던 각자의 생이 엇갈리는 짧은 순간을 사랑이라고 노래한 이 시조엔 활달한 사랑의 유머 감각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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