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섭의 세상을 상상하는 과학] 과학자는 듣고 싶었다, 지구에 도착한 우주의 속삭임을

조선일보
  •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기술사
입력 2016.03.19 03:00

오정근 '중력파­아인슈타인…'

 '중력파-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 책 사진
지구로부터 13억광년 떨어진 머나먼 우주공간에서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서로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블랙홀들은 조금씩 서로에게 가까워졌고 어느덧 충돌하여 하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태양 3개 분량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면서 주변의 시공간이 왜곡되었다. 이 사건으로 발생한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13억년 후 그 중력파가 마침내 지구에 도달했다. 우주는 매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고 인류는 그 속삭임을 듣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각종 진동으로 가득찬 지구상에서 그 미세한 떨림을 감지할 수 있단 말인가? 검출된 신호가 잡음이 아니라 중력파의 존재를 보이는 증거라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러한 회의적인 시각은 천체물리학에 문외한인 사람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물리학계 내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오정근의 '중력파-아인슈타인의 마지막 선물'(동아시아)은 지난 수십년 동안 전 세계 과학자들이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성취해낸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학계 내외의 회의적인 시각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꼼꼼한 준비를 해 왔으며, 자연 현상에 대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 사진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과학기술사
근대 이후 인류는 과학을 통해 믿을 만한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력한 방법론을 구축했다. 물론 과학 지식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도 지진을 예측하는 데 실패하고, 일기예보는 빗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과학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식을 도출하는 방법이다. 전 세계 중력파 연구자들은 오랜 시간 잡음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정교한 기구와 데이터 처리 기법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중력파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토론과 검증을 거쳤다.

천체물리학자인 저자는 2008년 12월에 조직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KGWG)의 일원으로 중력파 검출을 위한 과학자들의 전 지구적 네트워크에 참여했다. 이 책이 갖는 의미는 한국의 과학자들도 어느덧 세계 기초과학 탐구의 한귀퉁이를 차지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한국의 중력파 연구자들은 미약한 사회적 지원에도 고군분투하며 미국의 중력파 검출기 '라이고'(LIGO)에서 나오는 관측 데이터 분석 작업에 기여했다. 이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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