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15일 저녁 측근들의 무더기 공천 탈락 소식을 자택에서 뉴스로 접했다고 한다. 유 의원의 한 측근은 "뉴스를 접한 뒤 별다른 말씀은 없었다"며 "대신 깊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유 의원은 16일 새벽 집을 빠져나와 대구의 모처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 측은 "서울이나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은 전혀 없다"고 했다.

◇"유 의원 깊은 고민 중, 신중하게 판단"

유 의원은 이날 오전 공천에 탈락한 자신의 측근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해진(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의원은 컷오프(공천배제) 결정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기자들과 만나 "유승민 의원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힘내라고 위로의 말을 했다"고 했다. 유 의원은 조 의원 외에 낙천한 다른 측근 의원에게도 전화를 걸어 위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측근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힘내라는 이야기도 했지만, 정작 본인의 고민이 더 깊은 것 같았다"며 "무엇이 됐든 유 의원이 신중하게 판단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유승민 선거사무소는 지금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대구 동구 선거사무소에 16일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다.

['공천 뇌관' 유승민의 운명은?]

유 의원은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컷오프' 통보를 받는 경우에서부터, 경선 대상이 되는 경우 등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관련 거취 문제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의 한 측근은 "유 의원은 겉으로는 유(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대구 남자' 스타일"이라며 "어떤 판단을 어떻게 내릴지 예측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유 의원 측 관계자는 "19대 총선에서 수족(手足)이 다 잘려나간 상태에서 홀로 공천을 받은 이재오 의원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며 "유 의원이 깃발을 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유 의원이 전날부터 '무소속 출마 선언문'을 작성했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유 의원 측은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뿔뿔이 흩어진 친유승민계

공천에서 탈락한 유 의원 측근들은 일단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모양새다. 조해진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역대 최악의 밀실공천, 보복공천, 집단학살공천, 정당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공천"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잘못된 정치, 잘못된 국정 운영을 바로잡아서 지난 8년간 국회의원으로서 나라에 봉사할 기회를 준 지역 주민들과 대한민국에 보답할 것"이라며 무소속 출마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류성걸(대구 동구갑) 의원은 당에 공천 재심을 요구했다. 류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유승민 의원이 자기 나름대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저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종훈(경기 성남분당갑)·김희국(대구 중남구) 의원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제 입장과 향후 계획에 대해 조만간 설명할 것이다"며 관망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이재(강원 동해·삼척)·홍지만(대구 달서구갑) 의원은 컷오프를 받아들였다. 이이재 의원 측은 "불출마하며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권은희(대구 북구갑) 의원은 "그동안 사랑해주신 북구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며 컷오프를 받아들이는 취지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권 의원은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봄날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파장 가라앉을 때까지 숨 고르기?

당 안팎에선 공천위가 수족을 쳐낸 상황에서 유 의원의 처분을 미루는 것에 대해 "지도부와 공천위도 깊은 고민에 빠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고민의 핵심은 청와대는 유 의원 컷오프를 원하지만, "수도권 민심 등을 고려해 유 의원은 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청와대는 빠른 처리를 원하지만, 그럴 경우 수도권 민심 이반 가능성이 크다"며 "유 의원에게 경선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당 정체성과 맞지 않고 당·청(黨·靑) 갈등을 만들었다"며 친유승민계 의원들을 컷오프 시킨 상황에서 '몸통' 유 의원을 놓아두는 것은 논리적인 모순이란 얘기도 나왔다. 이 때문에 공천위가 파장이 가라앉을 때까지 숨 고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