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일본이 도운 韓流

입력 2016.03.14 03:00

이한수 문화부 차장 사진
이한수 문화부 차장
미국의 한국학 연구자 존 덩컨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를 여러 해 전 인터뷰했을 때 기사에 쓰지 못한 부분이 있다. 덩컨 교수는 말했다. "서양에서 한국의 성취를 진심으로 인정한 때가 언제인지 알아요? 1988년 서울올림픽? 아니에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어요. 서양인들은 '사우스 코리아(한국)가 일본과 나란히 월드컵을 열 정도로 발전한 거야?'라며 놀랐습니다." 덩컨 교수는 "서양인들이 일본을 기준으로 삼는 게 씁쓸하더라도 그게 사실"이라고 했다.

개인 경험이지만 일본이 한국의 홍보 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2008년 와세다대학에서 1년간 연수할 때 미국·영국·프랑스 등에서 온 서구 유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처음엔 한국에 대해 잘 몰랐다. 남북한을 혼동하는 이도 있었다. 몇 달 지나면서 달라졌다. 한국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는 한·일 관계가 가장 좋을 때였다. 일본 TV는 연일 한국 관련 뉴스를 전했다. 한국 드라마를 방영하지 않는 채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유명 연예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국 화장품 좋은 거 다 아시죠? 이걸 바르니까 한국 여성들이 예쁜 거예요. 그런데 가격이 이렇게 싸요"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구 유학생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간코쿠(韓國)'와 '기타초센(北朝鮮)'의 차이도 금세 알게 됐다.

'한류(韓流)'가 유럽 지역에 퍼지게 된 초기에는 일본 덕이 있었다. 일본 애니메이션과 J팝에 빠져 있던 유럽 젊은이들이 일본 방송과 잡지를 보다가 한국 관련 소식을 접했다. 드라마 '겨울연가'로 욘사마 열풍이 불 때 유럽의 일본 마니아들도 한국 드라마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K팝이 유럽 지역에 확산하게 된 데도 일본 도움이 있었다.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데뷔한 때가 2001년이다. 보아는 이듬해 오리콘 차트(일본 가요 순위) 1위에 올랐고, 연말 가요 축제인 NHK 홍백가합전에 6년 연속 출전하며 K팝 열풍을 이끌었다. 한일 관계가 얼어붙기 직전인 2011년에는 동방신기·소녀시대·카라 등 아이돌 그룹 세 팀이 홍백가합전 무대에 섰다. 2011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유럽 대륙 처음으로 K팝 공연이 열린 배경에는 일본발(發) 한류 열풍이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시 공연장을 찾은 1만4000여 유럽 젊은이는 슈퍼주니어와 소녀시대의 춤을 따라 추며 한국어로 노래를 불렀다. 서양에 분 첫 한류 열풍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부정적일 때가 많았다. 멀게는 임진왜란, 가깝게는 강제병합이라는 침략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일본이 이웃 나라라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일본은 서구 세계가 선진국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동양 나라다. 한국이 그 옆에 있다는 사실은 지리적 이점(利點)이 될 수 있다.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결국 우리 역량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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