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대 연구 경쟁력, 문제의 핵심은 따로 있다

조선일보
  •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입력 2016.03.11 03:00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해외 석학들이 서울대학교 자연대의 연구 경쟁력을 평가한 보고서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뼈아픈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고서가 지적한 사항들이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제기되어 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서울대는 이런 문제점이 왜 고쳐지지 않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핵심은 교수 개개인이 n분의 1로 참여하는 의사 결정 구조와 교수들 사이의 온정주의이다.

평가 작업에 참여한 미국 메릴랜드대의 콜웰 교수는 우리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소수 분야를 집중 육성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려면 특정 분야를 선택하고 좋은 교수를 뽑아야 하는데,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어떤 분야는 우선순위를 낮출 수밖에 없다. 서울대의 관행상 이는 교수회의 협의를 거치는데, 저마다 의견과 이해관계가 다르니 합의를 이루기가 매우 어렵다. 어쩌다 신임 교수를 뽑는 단계에 들어가면 거의 전쟁 수준이다. 분야와 사람을 놓고 '세력' 간 첨예하게 대립하고, 종국에는 교수 회의에서 표 대결까지 벌어지니 아예 교수를 뽑지 않고 보류하는 일이 요즘도 있다. 정년퇴임으로 물러나는 자리는 더욱 어렵다. 퇴임하는 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학과 출신 교수들의 의견까지 들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캐넌 생명과학 주식회사의 나이트 부사장은 생산력이 낮아진 시니어 교수들이 젊은 연구자들에게 공간을 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니어 교수가 거절하면 이를 강제할 힘이 학부장에게 없다는 것이다. 상당수 평가위원은 성과가 좋은 교수에게 인센티브를 주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연봉이나 공간에서 의미 있는 차등 대우를 하려면 교수 회의에서 그러자고 합의해야 하는데 이 또한 어렵다. 교수들은 능력 차이로 위화감이 조성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수들은 자신들이 평가받고 비교되는 데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런 연유로 강의의 질도 연구 생산성도 교수 개인 능력이나 의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유명 학술지의 영향 지수라는 것과 발표 논문 수를 가지고 계량적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정책은 사실 대학이 자체적으로 못 하니 20여 년 전에 정부가 강제 도입했던 것이다. 1990년대 초반 대학은 교수 10여 명 안팎으로 구성된 작은 학과가 대부분이었는데, 교수들이 선후배나 은사 관계로 얽혀 있어 서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하니 획일적으로 집행하게 되고, 결국 각종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지금이라도 내용과 실제 가치를 가늠하는 정성 평가로 바꿔야 하는데 아직도 온정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학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해외 석학들이 지적한 점들은 하나같이 서울대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사항들이다. 이를 실행하려면 현대과학의 방향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디테일에 강한 학부장이나 학장 혹은 총장을 뽑아, 그들에게 5년 이상의 임기를 주어 중장기 계획을 세우게 하고 이를 집행할 수 있는 인사권과 예산배분권을 적절하게 주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이해관계가 다양한 교수들의 의견을 모두 반영하여 학장이나 총장을 뽑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 보고서로 촉발된 사회의 관심을 서울대 혁신의 시발점으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학교 정보]
세계석학, 서울대학교 자연대 연구 경쟁력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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