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모(여·26)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린다. 겨울 방학 때 잠잠하다가 새 학기를 맞아 다시 시작된 학부모들의 'SNS(소셜네트워킹 서비스) 등쌀' 때문이다. 수시로 자녀의 학교생활에 대해 카카오톡 등 SNS 메신저로 묻는 통에 휴대폰 보기가 겁날 정도다. 김씨는 "학부모와 공유하는 SNS에 수업 사진을 찍어 올리고, 학부모의 상담 요청 글에 일일이 댓글을 달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애정이 없는 것 같다'는 학부모들의 항의가 곧바로 들어와 퇴근해서도 SNS를 관리하느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학부모들이 아이 담임교사를 대하는 게 어려워 교무실 문 앞에서 서성이던 일은 이제 옛일이 됐다. SNS로 시도 때도 없이 담임교사와 소통하는 세상이다. 카카오톡이나 네이버 밴드 같은 SNS를 이용하는 건 물론이고, 교사와 학부모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전용 SNS까지 등장했다. 그러면서 'SNS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초·중·고교 교사들이 부쩍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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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유모(여·29)씨는 최근 SNS 알람 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한다. 한밤중에도 학부모들은 수시로 SNS 메시지를 보내 숙제나 준비물을 묻는다고 한다. 아이의 훈육이나 진로를 상담하는 장문의 메시지는 물론이고 때론 모바일 게임 친구 신청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유씨는 "한 번은 자정이 다 돼 수신된 학부모 메시지에 답을 안 했다가 다음 날 '왜 답장을 안 하느냐'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맞벌이 학부모들이 퇴근해 SNS 메시지를 쏟아내는 오후 8시가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SNS에 올린 교사의 과거 사진과 글 등을 뒤져 사생활까지 검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여·27)씨는 최근 아이들로부터 "코 수술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학부모들이 이씨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옛 사진을 보고 "성형한 것 같다"고 수군대는 것을 아이들이 들은 것이다. 이씨는 곧바로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 계정의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 최모(여·27)씨는 작년 12월 교무회의에서 교감으로부터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해외여행 사진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학부모들이 '교사가 팔자 좋게 놀러 다닌다'고 지적한다는 이유에서다. 최씨는 "사생팬(사생활까지 파고 다니는 팬)에 시달리는 아이돌이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학부모가 SNS를 통해 보내오는 '기프티콘(모바일 상품권)' 촌지(寸志)도 교사들의 골칫거리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정모(여·34)씨는 최근 한 학부모로부터 '1년간 감사했다'는 메시지와 함께 1만3000원 상당의 과자 선물 세트 기프티콘을 받았다. 정씨는 학부모에게 결제를 취소해달라고 하소연하다가 학부모가 끝까지 떼를 쓰는 바람에 결국 같은 가격의 기프티콘을 사서 학부모에게 보냈다고 한다. 정씨는 "기프티콘 촌지는 수신자 측에서 거절할 방법이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학부모들이 주는 'SNS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SNS 기능이 없는 2G폰을 별도로 구입해 업무용으로 쓰는 교사도 늘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최모(여·34)씨는 새 학기를 맞아 업무용 2G폰을 따로 만들었다. 결혼을 앞둔 작년 12월 예비남편과 함께 여행을 갔다 온 제주도 숙소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해놓았다가 학부모들로부터 '호텔 사진을 보고 아이들이 무슨 상상을 하겠느냐'는 항의 메시지를 받고서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사생활 침해를 넘어서 SNS상 명예훼손 같은 새로운 유형의 교권(敎權) 침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교육 당국의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