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다오'라 불리는 홍명보 감독은 누구?]

"예전엔 삼겹살 같더니 이제 좀 근육 생겼네. 아직 멀었어. 더 뛰어!"

7일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뤼청의 클럽하우스 훈련장. 홍명보(47·사진) 감독의 지적에 한 젊은 선수의 얼굴이 빨개졌다. 다른 선수들의 뜀박질도 덩달아 빨라졌다. 4년째 항저우 코치를 맡은 가오슝은 "홍다오(洪導·홍 감독을 뜻하는 중국말)에겐 월드컵 4회 출전의 레전드가 주는 권위가 있다"고 했다.

2014년 7월 브라질월드컵 16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사령탑에서 물러난 그는 "월드컵을 생각하면 팬들에겐 늘 죄송한 마음"이라며 "1년 반을 쉬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원동력을 얻었다"고 했다. 홍 감독이 향한 곳은 뜻밖에도 중국 수퍼리그의 항저우 뤼청이었다.

"지도자 경력에서 클럽 감독이 없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어요. 그러던 차에 성장하는 중국 무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홍 감독이 택한 항저우 뤼청은 광저우 에버그란데처럼 선수 영입에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클럽이 아니다. 대신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을 운영해 내실을 기하는 구단이다. 홍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마친 뒤 본격적인 축구 행정가의 길을 걷고 싶다"며 "항저우에서의 감독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6일 홍 감독의 항저우는 수퍼리그 개막전에서 창춘 야타이를 2대1로 꺾었다. 홍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이후 620일 만에 사령탑으로 나선 경기에서 거둔 승리였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우리가 못했는데 상대는 더 못해서 이긴 것"이라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홍 감독은 얼굴이 검게 탔고 볼이 쏙 들어가 있었다. 살이 잘 안 빠지는 체질인데 태국과 두바이 전지훈련을 거치며 2㎏이 줄었다고 했다. 수년간 한국 대표팀 정상 선수들과 함께했던 홍 감독에게 중국 클럽 선수들과 만남은 충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보통 축구 선수들 체지방률이 9.5% 정도인데, 중국 선수들은 12~13%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식당에 가보니 케이크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먹는 친구도 있더라고요."

기본적인 몸 관리가 안 된 선수들에게 홍 감독은 새벽 러닝 훈련을 주문했다. 중국에선 보기 드문 '강훈련'에 속한다. 하루 세 차례 훈련에 중국 선수들의 체지방도 쑥쑥 빠졌다. "저부터 함께 뛰었죠. 여긴 독자로 귀하게 자란 아이가 많아선지 넘어지면 아프다고 잘 안 일어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청소년 시절 '축구 천재'라고 불렸지만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한 한 선수는 "네가 얼마나 잘하냐? 월드컵엔 뛰어 봤느냐? 당장 짐을 싸서 나가라"는 홍 감독의 호통을 듣기도 했다. 그는 창춘과 개막전에서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팀 승리를 도왔다.

"여긴 대표팀에선 못 느껴본 재미가 있어요. 젊은 선수들을 성장시켜 좋은 팀을 만들 때 느끼는 뿌듯함입니다.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는 대표팀과 달리 나는 내일도 이들과 함께하겠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기분이 참 좋던데요." 창춘전에는 베스트 11 중 5명이 항저우 유스 출신의 23세 선수들이었다.

구자철·김영권 등 '홍명보의 아이들'은 개막전을 앞두고 홍명보 감독에게 '자유(加油·중국어로 힘내라는 뜻)! 감독님' 등의 격려 문자를 보냈다. "이젠 중국에서 제 아이들을 길러내고 싶어요. 외국 선수로 팀 전력이 결정되는 이곳에서 젊은 중국 선수들로 새로운 바람을 한번 일으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