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知性? 우리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진 않나

조선일보
입력 2016.03.05 03:00

똑똑해지려고 도입한 첨단기술… 오히려 '집단 어리석음'에 빠뜨려
코앞에 닥친 일, 시키는 일만 하며 판단력·의지 잃고 소모되는 개인
서로를 괴롭히는 악순환 중단돼야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군터 뒤크 지음|김희상 옮김|비즈페이퍼|464쪽|2만원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화상회의 시스템 같은 첨단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업무 능력을 높여줬다. 그런데 이상하다. 경제는 발전하고 사람들은 행복해져야 할 텐데, 성장이 더뎌지고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온 세계가 아우성이다. 직원들은 정리해고를, 최고경영자(CEO)는 실적악화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독일 빌레펠트대학 수학과 교수를 하다가 IBM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일했던 경력의 저자는 우리가 빠져 있는 딜레마를 우화(寓話) 형식으로 들려준다. 은행들은 자동화 기기를 통해 입출금 업무를 고객이 직접 처리하게 함으로써 막대한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얻었다. 고객이 더 이상 지점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게 된 것이다. 예전엔 직원이 고객의 통장을 직접 받아 업무를 처리하며 상담도 하고 다른 상품을 권유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고객 대면(對面)이 최소화됐다. 각종 금융상품을 판매하려 콜센터 직원들이 전화를 걸지만 고객은 이런 의도적 접근은 싫어한다. 하루에 카드사, 보험사, 은행 콜센터에서 오는 전화를 받는 것은 이제 현대인의 보편적 경험이다. 지난 수십년 은행들은 고객과의 관계를 악화(惡化)시키는 쪽으로 비용을 절감해왔고, 만인(萬人)이 불편과 고통을 나눠가진 셈이다.

정보화가 불신(不信)을 부르는 것도 역설이다. 독일에선 최근 병원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숫자와 해당 병원의 암 환자 생존 가능성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 내용이 보도되자 지역의 병원들마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는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지표가 되어버렸다. 이미 우리는 블로그 상품평이나 아마존 서평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세상은 더 난해한 곳이 되었다. 집단지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저자는 우리가 스마트해지기 위해 도입한 이기(利器)를 통해 오히려 어리석음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경제·경영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경영'류의 해법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컴퓨터도 네트워크 사용량이 85%를 넘으면 데이터 전송을 늦추며 스스로 부하를 줄이는데, 기업들은 불황을 맞으면 인원을 줄여 인적자원 활용률을 95~100% 수준까지 밀어붙인다. 그 결과 "직원들은 당장 코앞에 닥친 일, 위에서 내려온 일부터 최우선 처리하고, 부실하게 처리된 업무를 가릴 핑계를 꾸미게" 된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지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황이 되어, 누구도 이 쳇바퀴에서 먼저 빠져나오지 않는다. 낙오가 두려운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을 돕는 첨단 기기가 많아졌지만, 일은 결코 줄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은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내릴 때도 많다. 우리는 판단력이 흐려진 채 매일 눈앞의 일만 처리하면서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직장에서의 일을 돕는 첨단 기기가 많아졌지만, 일은 결코 줄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은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내릴 때도 많다. 우리는 판단력이 흐려진 채 매일 눈앞의 일만 처리하면서 점점 멍청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Getty Images 이매진스
더 나쁜 것은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 금융위기다. 그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은행이 '리스크 없음'이라고 포장한 상품을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은행들이 리스크를 잘 모르는 고객과 국가, '더 멍청한 은행'을 악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맹목(盲目)에 빠져 "문제를 전체적으로 바라볼 능력이 없거나, 전체적으로 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목격한 사례도 소개된다. 영업실적이 좋을수록 통신비 지출이 많다면서 CEO가 최고영업사원을 독려하자, 직원들은 콩고에 전화를 걸어 잡담을 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됐냐고? 다음 달에는 영업실적이 가장 좋은 사원의 통신비 지출이 제일 적었다. 그러자 당장 비용 감축 캠페인이 벌어진다. 집단 역시 개인에게 속아넘어 가는 경우가 많다.

저자는 독일어 원제이기도 한 이 '집단어리석음'(schwarmdumm)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물고 늘어지는 악순환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그는 결단과 행동을 강조한다. 다시 저자의 IBM 근무 시절 일화. 오후 6시에 '칼퇴근'을 하던 그는 동료로부터 "조퇴하나?"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군"이란 비아냥을 듣는다. 하지만 그대로 퇴근했다. 만약 눈치를 보고 자리에 앉았다면, 그는 집단어리석음에 빠진 셈이었다. 이 어리석음은 집단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근 국내에서 '우아한 형제들'이란 신생(新生) 기업의 '일 잘하는 법'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종의 행동지침인 이 리스트에도 '휴가 가거나 퇴근 시 눈치 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같은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직장인들의 삶은 세계 어디나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집단에서 판단력과 의지를 잃은 채 하루하루 '번 아웃(burn out)'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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