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중국에서 환국한 날은 1945년 11월 23일이었다. 조선일보가 복간호(復刊號)를 발행한 것도 이날이었다. 일제는 1940년 8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강제 폐간시켰다. 5년 3개월 만에 다시 등장한 민족지는 1면 복간사(復刊辭)를 통해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大同)에 합류하자'고 외쳤다. 서로 의견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자주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큰 과업에 동참하자는 호소였다. 다음 날 조선일보는 김구의 친필 휘호를 1면에 실었다. '有志者事竟成(하고자 하는 뜻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 중국 고전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말이다. 백범은 귀국하자마자 바로 그날 붓을 들어 자신의 꿈을 조선일보를 통해 온 민족에게 전한 것이다.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복간호에 '민중과 함께 나가라'는 축하 기고를 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고 공화(共和)를 시작하는 이때 민중의 공의(公義)를 모아 민족의 앞날을 열어가라"고 했다. 광복의 벅찬 감격 속에서 이승만과 김구 두 지도자가 꿈꾼 새 나라가 완전 독립을 이룬 자유·자주 국가 건설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위기 앞에서 분열, 권력만 다투던 위정자들
당시 미국과 소련은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통치하고 있었다. 해방 후 사회적·경제적 혼란은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가장 심각한 갈등은 좌와 우의 이념 대립이었다. 그러나 이승만도, 김구도 이런 상황을 미리 짐작한 것은 아니었다. 건국의 주역들은 세계를 휩쓸던 공산주의 열병(熱病)이 김일성 독재 체제 출범의 자양분이 될 줄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련과 중국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한반도를 최전방으로 삼으리라는 예견도 미처 하지 못했다. 우리 국론(國論)은 분열됐고, 그렇다고 강대국들을 상대로 우리의 뜻을 설득하고 관철할 힘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식민지 지배에서 막 벗어난 나라의 경제력은 더없이 허약했다. 그야말로 준비되지 않은 광복(光復)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은 해방의 감격은 결국 국토 분단을 낳았고 6·25전쟁이라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지금 이 시점에서 70년 전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개된 한반도 상황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그때보다 수백 배 강해졌고 외교적·군사적 틀도 제법 번듯하게 갖추었다. 국제 정세를 보는 국민의 눈도 높아졌다. 그러나 개성공단 폐쇄를 비롯해 대북 제재를 둘러싼 국론은 한 점으로 모아지지 않았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 위기 앞에서 지도층의 의사 결정이 답답하게 지연되는 것을 온 국민이 지켜보았다.
현재 한반도를 덮고 있는 먹구름은 과거 북의 도발이 가져왔던 위기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북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독재 정권의 위험한 핵 장난이 민족 전체의 절멸(絶滅)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70년 동안 어렵게 쌓아온 번영과 안녕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반 위에 서 있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무엇보다 민족과 나라의 운명이 달린 북핵 해결이 우리의 독자적 의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됐다. 결국 유엔이 나서야 했고, 미국과 중국의 거래를 통해 대북 제재와 사드 배치 문제가 처리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했다.
지금이야말로 오늘의 눈으로 역사를 되돌아보고 역사에서 깨달은 교훈으로 현실의 벽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어야 할 때다. 지난 150년 우리가 겪었던 파란과 굴곡이 상당 부분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에 기인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거대한 유라시아대륙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한반도는 동쪽으론 '일본을 향한 비수', 서쪽으론 '중국의 머리를 때리는 망치'에 해당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가 해양 세력 대(對) 대륙 세력의 이익이 충돌하는 최전선이 된 근대 이후 이런 현상은 더욱더 심해졌다. 청일(淸日)·러일·6·25 등 세 차례의 전쟁과 국망(國亡), 분단, 남북한 별도 정부 수립 같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은 모두 한반도의 지리적 위치, 이와 관련된 국제 정세 변동과 연결 짓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큰 사건의 뒤에는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강대국들의 집요한 전략이 있었다.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정학적 숙명 뚫고 나갈 국가적 방략을
그러나 한반도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어떤 외부 도발에도 대처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춰야 하고, 그 군사력을 지탱해줄 경제력도 강건하게 유지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단합된 국론과 그 국론을 이끌어 줄 정치적 리더십이다. 구한말 이후 우리의 실패의 역사를 돌아보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외세가 한반도에서 각축을 벌일 때마다 위정자들은 예외없이 분열돼 있었고, 국익보다 개인과 당파의 이익을 앞세웠다. 그들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열강의 책상 위에서 요리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안에서 권력 싸움에 몰두했다. 정치 지도층의 분열과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無知)의 필연적 귀결이 망국(亡國)이요 분단이었다.
이 나라 위정자들은 국가 안보와 국민의 생존이 위협받는 엄중한 상황 앞에서 다시 정쟁(政爭)에 날을 지새우고 있다. 한반도 위기의 해법 모색이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상황인데도 여야는 다가올 총선에서의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이렇듯 정치는 분열돼 있고 외교나 국방도 홀로 서지 못하면서 정치인들은 통일(統一)을 쉽게 말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조선일보는 오늘 무거운 마음으로 창간 96주년을 맞는다. 북한은 국제적인 경제 제재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북한이 자초한 벌(罰)이다. 하지만 이런 국제적 압박이 언제 어떤 북한의 충동적 도발을 부를지 알 수 없다. 한편으론 북의 도발을 외교적·군사적으로 억제하면서 대화와 교류 속에 통일을 찾는 길을 찾지 않을 수 없는 때이다.
'통일나눔펀드'로 분단 극복 꿈 모아가야
조선일보가 통일 준비 운동으로 시작한 '통일나눔펀드' 모금 기부자가 여덟 달 만에 15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인 기부액은 2250억원에 이른다. 북의 핵실험 이후에도 이어지는 기부 행렬을 보며 조선일보는 김정은 정권이 위험한 도박을 하면 할수록 더 열심히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를 실감하고 있다. 우리가 무너뜨려야 할 대상은 강압 정권의 핵심 세력들일 뿐, 아무 죄 없이 굶주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오히려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한반도 통일은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가 중층적으로 연결돼 있어 단시일 내 끝나지 않을 과제다. 김정은 이후까지 내다보는 통찰과 시야가 필요하다. 냉정한 눈으로 크게, 멀리 보아야 한다. 국민이 하나가 된 가운데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제각각 자기 나름의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 북핵 위기가 그 필요성을 한층 더 일깨워주었다. 우리가 지정학적 운명을 주체적·능동적 능력으로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냐 하는 것은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변치 않을 숙제다. 조선일보는 옆에서 손잡고 뒤에서 밀며 그 길을 변함없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