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2011년… '반성 없는 일본'은 반복된다

조선일보
  • 어수웅 기자
    입력 2016.03.05 03:00 | 수정 2016.03.05 17:27

    [3·11 5주기 관련 서적 잇단 출간]

    다시 후쿠시마… - 재난사진展 기록 "국민 넘어 세계에 사죄해야"
    끝이 없는 위기 - 원전 사고 연구 "안전한 방사선량이란 없다"
    죽은 자들의… - 日 인문학자의 르포… 死者와의 대화 통해 생존자 위로

    3·11 5주기 관련 서적 잇단 출간
    "3·11 이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것은, 실은 일본 패전 때와 똑같은 구조가 반복된 것이다. 그런 끔찍한 재해가 있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발생 방식도, 수습 방식도, 통제되고 있다는 허언도, 그 허언에 국민 다수가 따라가는 상황도, 모두 일본 패전 직후의 '전후 부흥' 신화 구조를 반복하고 있다. 즉 1945년과 2011년에 일어난 일은 기본적으로 연속선상에 있다는 이야기다."(서경식 도쿄 게이자이대 교수)

    동일본대지진이 3월 11일로 5년을 맞는다. 일본 국토의 10%가 방사성물질로 오염됐고, 15만명 이상이 피신한 참사다. 20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후쿠시마의 재앙은 여전히 진행형. 역사에 대한 성찰에 시효가 있을 리 없다. 이번 주에만 3권의 관련 신간이 출간됐다. 단순히 원전 혐오와 반대라는 단선적 구호를 넘어, 우리가 놓친 부분에 대한 경고와 성찰은 없을까.

    '다시 후쿠시마를 마주한다는 것(서경식·정주하 외 지음, 반비)'은 역사적·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연대의 힘을 되찾자는 시도다. 재난 지역을 찍은 사진으로 1년 4개월 동안 일본 6개 지역을 순회한 한국 사진작가 정주하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시와 각 전시 현장에서의 대화 기록을 정리했다.

    사진전 기획부터 함께한 재일 지식인 서경식 교수는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겹쳐 놓는다. 핵심은 반성 없는 일본. 방사능 재해는 일본이 국책(國策)으로 도쿄전력과 함께 전 세계에 끼친 가해라는 것. 세계의 바다와 세계의 공기를 더럽혔으므로, 당연히 전 세계를 향해 사죄하고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일본은 자신의 국민에게조차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 '파시즘 회귀'의 징후다.

    '끝이 없는 위기(헬렌 캘디콧 엮음, 글항아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의학적, 생태학적 영향에 대한 최신 연구와 에세이를 모았다. 대표저자인 헬렌 캘디콧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의사회' 공동 설립자이자 반핵 활동가. 그는 2013년 3월 뉴욕에서 심포지엄을 열었고, 의학·생물학·원자력학·에너지학 관점에서 심포지엄의 결과를 묶었다. 캘디콧은 "전 세계 주요 미디어는 방사능에 관해 끔찍하게 무지했다"고 비판하면서 '안전한 방사선량'이란 없다고 선언한다. "1년에 20밀리시버트까지는 방사능에 노출돼도 괜찮다"는 일본 정부 발표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연간 20밀리시버트는 흉부 X선을 매일 3회씩 1년 내내 촬영했을 때 해당하는 양. 하지만 ①몸에 들어간 방사성 원소는 계속 축적되며, ②어린이는 방사선 발암 영향이 어른의 10~20배이고, ③암과 백혈병의 잠복기는 5~10년이므로, 후쿠시마의 경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경고한다.

    후쿠시마 사고 현장 북쪽 25㎞에 있는 미나미소마 해변.
    후쿠시마 사고 현장 북쪽 25㎞에 있는 미나미소마 해변. 방파제 위에 누군가가 곰을 올려놓았다. 태평양 너머 먼 영원의 바다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부디 그 무엇이 다시 찾아올 봄이기를. /사진작가 정주하
    '죽은 자들의 웅성임(이소마에 준이치 지음, 글항아리)'은 재난 지역을 4년 동안 돌아본 일본 인문학자의 르포다. 문학과 종교학을 전공한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이소마에 준이치 교수는 재난 초창기와 4년이 흐른 뒤의 일본 내 균열과 격차를 고통스럽게 이야기한다. 토목공사 같은 부흥 경기로 들썩거리는 센다이, 주민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는 미야기현, 그리고 귀환 불능 지역이 된 후쿠시마. 만장일치로 '연대'와 '힘내라'를 이야기하던 재난 초기와는 다르더라는 것.

    그는 이와테현 오쓰치 지역의 '바람의 전화'를 언급한다. 동일본 대지진의 가장 큰 피해 지역 중 한 곳에 설치한 상징적 전화다. 바람의 전화는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사자(死者)'와의 대화를 위해 '산 자'의 마음속에 있는 회선을 이용하는 전화다. 전화기 옆에는 노트가 있어 유족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노트는 찾아오는 사람 누구나 읽을 수 있다.

    산 자와 사자가 직접 마주하면 감당하기 힘든 감정적 에너지가 분출하는 법. 그래서 제3의 존재, 통역자, 어쩌면 샤먼의 역할이 필요하다. '죽은 자들의 웅성임'은 샤먼이자 통역의 역할을 자임한 인문학자의 진혼곡이자 산 자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독일 비평가 발터 베냐민의 개념 중에 '유리병 편지'와 '비상 경보기'가 있다. 외딴 섬에 표류한 사람이 유리병에 넣어 바다로 흘려보내는 편지. 언젠가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 주우리라. 그리고 더 큰 위기와 재앙에 대한 경고. 세 권은 인문과 예술과 과학의 언어로 쓴 2016년의 유리병 편지요, 비상 경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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