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9시 25분쯤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서울 만남의 광장' 휴게소를 갓 지난 지점. 포르셰 SUV를 몰고 가던 50대 여성이 오른손으로 핸들을 조작하며 왼손으로는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곧바로 검은색 쏘나타 차량이 SUV 옆으로 따라붙었다. 나란히 달리는 쏘나타를 보고도 2분 정도 더 전화를 붙잡고 있던 이 여성은 쏘나타 운전자가 경광 신호봉을 창 밖으로 흔드는 것을 보고야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이 여성은 "일반 승용차에 경찰이 타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경찰이 1일부터 고속도로 암행 순찰에 나섰다. 경찰 순찰차가 아닌 일반 승용차를 타고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들에 대한 '비노출 단속'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부터 경부고속도로에서 시범 운용에 들어간 암행 순찰차에 본지가 동승해 단속 현장을 돌아봤다.
이날 암행 순찰 시작 후 한 시간 동안 단속된 교통법규 위반자 4명 중에서 적발될 때까지 암행 순찰차를 미리 알아차린 운전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암행 순찰차는 검은색 외관에 보닛과 운전석·조수석 문 옆에 탈착이 가능한 경찰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1~2m 거리에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지가 작년 여름 경찰 순찰차에 동승해 고속도로 지정차로 위반 단속에 동행했을 때 순찰차를 발견한 운전자들은 곧바로 2차로로 차로를 변경해 단속을 피했다. 하지만 이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은 암행 순찰차가 바로 옆까지 다가와도 순찰차인 줄 모른 채 교통법규를 위반하며 계속 주행했다. 일부 운전자는 지정차로제를 무시하고 추월 차로인 1차로를 계속 달리거나 급가속해 차로를 바꾸며 다른 차 사이를 빠져나가기도 했다. 한 소형 SUV 운전자는 암행 순찰차가 바로 뒤에 있는데도 5분 이상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1차로에서 3차로로 급히 차로를 변경하는 '칼치기' 운행을 하다가 단속팀 시야에서 사라졌다. 단속팀 최승원 경사는 "암행 순찰차엔 블랙박스 외에 캠코더도 준비돼 있어 위반 사항을 채증해 사후에 위반 여부를 최종 판단할 수도 있다"고 했다.
경찰은 암행 순찰차 제도를 통해 운전자들 스스로 교통법규를 지키는 문화가 정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들이 '언제 어디서 단속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암행 순찰차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한 운전자들이 스스로 교통법규를 지키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지난 1월 암행 순찰차 제도 시행 방침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 2월엔 암행 순찰차의 모델을 일반에 공개했다. 이날 신갈분기점 인근에서 버스전용차로제 위반으로 단속된 60대 남성은 "사람들이 암행 순찰차가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면 마구잡이 운전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부고속도로의 경기와 충남 구간에서 암행 순찰차 2대를 동원해 단속을 벌여 13건의 법규 위반 차량을 적발했다. 단속된 운전자 중에는 사기 혐의로 수배된 40대 남성도 한 명 있었다.
일부 운전자는 암행 순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았다. 경찰 순찰차는 단속 때 짧은 시간에 속도를 급히 올려 불법 운전자를 따라잡은 뒤 위반 차량을 오른쪽 끝 차로 쪽으로 이동시킨다. 하지만 암행 순찰차의 경우 뒤따르던 차들이 순찰차임을 알아차리지 못해 속도를 줄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사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단속에 걸린 한 여성 운전자는 검은색 암행 순찰차가 급히 따라붙자 "깡패가 쫓아오는 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은 "오는 6월까지 암행 순찰차를 시범 운용하면서 운전자들에게 홍보를 강화하고 불편 사항 등 여론을 수렴해 연말에는 전국 고속도로에서 운용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