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 세종학당 경쟁률 4대1… 자카르타는 대기자 500명

입력 2016.03.01 03:00 | 수정 2016.03.01 16:48

['코리안 쿨' 제3 한류 뜬다] [6] 한류 바람 탄 한국어 열풍

모스크바 한국어 학당은 사람 몰려 입학시험까지 치러
한국어능력시험 TOPIK, 작년 68개국에서 17만명 응시
이스라엘 히브리大, 한국학과를 가을부터 주전공학과 승격키로

"기분을 나쁘니까? 아니오, 기분을 안 나쁩니다."

지난달 21일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쪽에 위치한 세종학당(원광학교). '기분'과 '나쁘다'란 단어를 가지고 문장을 만들라는 주문에 여고생 아냐(17)가 진땀을 흘렸다. 아냐를 포함한 응시자 300명은 이날 세종학당 주말반 입학시험을 치렀다. 평일반 응시자 200명까지 합치면 봄 학기 한국어 수강 경쟁률은 2대1. 작년에 시험 봤다 떨어진 레나 욜키나(20)씨는 "올해는 꼭 합격해 내년 서울 여행 갈 때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고 싶다"며 웃었다.

“한국어 배우다 국악 소녀 송소희에 빠졌어요.” 멕시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난시 곤살레스. 멕시코대학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하는 난시는 “K팝보다는 한글과 국악을 통해 진짜 한국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어 배우다 국악 소녀 송소희에 빠졌어요.” 멕시코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난시 곤살레스. 멕시코대학에서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하는 난시는 “K팝보다는 한글과 국악을 통해 진짜 한국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세종학당재단 제공
멕시코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여대생 난시 곤살레스(22)씨는 국악소녀 송소희 팬이다. 슈퍼주니어가 좋아 한국말을 배우다 국악에 매료됐다. "한국 전통음악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절절히 표현해줘요. 힘들 때 유튜브에서 송소희의 민요를 들으면 위안이 되죠. K팝보다는 한글과 국악을 통해 진짜 한국을 알게 됐어요." 한국말은 최신 미국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얼마 전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엔 한국말 '기분(kibun)'이 등장했다. "왜 거짓말을 했느냐"고 추궁하는 상대방에게 주인공 파이퍼 채프먼이 답한다. "어떤 문화권에선 진실보다 상대방의 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국에선 그걸 '기분'을 맞춰준다고 얘기하죠."

미국 드라마에도 등장하는 한국말

한류는 우리말과 문자에 날개를 달아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세계 54개국에 설립한 138개 세종학당은 매학기 신입생들이 몰려 '홍역'을 치른다. 지난해 3월 테헤란에 있는 세종학당은 4대1 경쟁률을 보였고, 올해 신입생 650명을 모집한 멕시코시티에선 1300명 지원자가 몰렸다. 자카르타 세종학당은 대기자만 500명이 넘는다. 모스크바는 몰려드는 신입생에 강의실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입학시험까지 도입했다.

한국어능력시험 외국인 응시자 수 그래프
국립국제교육원이 주관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에 응시하는 외국인 숫자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세계 68개국에서 17만4883명이 응시했다. 5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TOPIK팀 임미옥 주무관은 "한류 영향으로 재외공관에서 토픽시험 요청이 쏟아진다"고 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해외 대학들도 증가 추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따르면 2014년 현재 97개국 1143개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학 강좌를 운영한다. 2005년보다 두 배 늘어난 수치다. 한국어반을 개설한 해외 초·중등학교도 1224개(2015년)에 달한다. 박희동 뉴욕한국교육원 원장은 "뉴욕, 뉴저지주에서만 30개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를 정규 과정으로 가르친다"고 했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데모크라시 프렙 스쿨'은 한국어는 물론 예절과 훈육을 중시하는 한국식 교육을 도입한 경우다. 학생 수 4000여명의 카도조 고등학교는 다음 학기부터 한국어를 정식 과목으로 채택했다. 한글을 가르치는 도서관도 생겼다. 미 전역에서 장서 및 자료 보유 2위를 자랑하는 뉴욕 퀸스 도서관과 플러싱 도서관에 지난해 한국어 교육과정이 개설됐다.

열 살 아르요가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도 다양하다.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피터 무디(33)씨는 원효대사의 '해골 물' 이야기에 매료돼 한국 불교와 철학을 공부한다. 2007년 템플스테이차 한국에 왔다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초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자기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신을 존속시키며 '한류'란 이름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았는지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프랑스 라로셸대학에 다니는 스테리 오란(23)씨는 "한국 소설과 미술이 좋아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K팝 스타들의 헤어스타일 비결을 배우러 한국으로 유학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만 아르요(10)는 자카르타 세종학당 최연소 수강생이다. K드라마 팬인 엄마 덕에 일찌감치 '가나다라'를 배운 아르요는 사극 '이산' 주제곡을 따라부를 만큼 한국말에 익숙하다. 테오도라 라하유(28)씨는 K팝이 좋아 한국어를 배웠다가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KEB하나은행에 입사했다.

모스크바 세종학당의 러시아 학생들이 ‘한글 세종’이라고 쓴 글씨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모스크바 세종학당의 러시아 학생들이 ‘한글 세종’이라고 쓴 글씨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세종학당재단 제공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은 가을 학기부터 한국학과를 동아시아학부 주전공학과로 승격시킨다. 한국학과 이주연 교수는 "2년 전만 해도 초급 2개 반밖에 없던 수업이 중급·고급으로 늘어났고 급기야 일본학과, 중국학과처럼 주전공학과로 승격된 것"이라고 전했다. 김세훈 숙명여대 문화관광학부 교수는 "한류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어에 대한 외국인들 관심을 높이 끌어올린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과거 외국인들은 '대한민국' 하면 경제 발전 혹은 전쟁을 떠올렸지만 이젠 한국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문화, 더불어 한국말과 문자를 떠올린다"며 "이 열풍을 지속시키려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 수요를 문화·학문·취업 등 층위별로 파악해 충족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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