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부가 '법질서 관계장관 회의'를 만들어 첫 모임을 가졌다. 법치주의를 정착시키고, 부패 근절 방안을 의논하는 기구라고 한다. 정부엔 경제부총리가 이끄는 경제장관회의가 있고, 교육부총리가 이끄는 사회장관회의가 있다. '법질서 회의'만 총리가 주재한다. 신문을 뒤적이는데, 회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눈길을 붙잡았다. 검찰 출신인 황교안 총리, 김현웅 법무장관, 성영훈 국민권익위원장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서 과거 흑백TV에서나 보던 장면을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이 들었다면 지나친 걸까.
검찰은 이제 정권의 만능열쇠라도 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까지 검찰 특수부를 지휘하던 검사장을 대공(對共) 수사와 국내 정보 담당 국정원 차장으로 임명했다. 인사 발령이 있은 지 한 달이 다 돼 가는데 국정원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조차 그 배경을 궁금해한다. '친구지간인 청와대 민정수석이 힘을 쓴 것 같다'고 소곤대는 소리만 들린다. 민정수석에겐 언제부턴가 '실세'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민정수석은 궂은일을 하는 자리다. 표 나지 않게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하고, 사정(司正)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따라서 국회 출석도 면제해준다. 이 정권에선 바로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권의 실력자' 소리를 듣고 있다.
박근혜 정권 검찰 정책도 앞선 정권들처럼 '작은 검찰'에서 출발했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검사의 외부 기관 파견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검사장 수를 순차적으로 줄이고,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겠다는 공약(公約)도 있었다. 검찰의 의사 결정 과정에 시민이 참여할 길도 넓히겠다고 했다.
그러나 3년 지나 돌이켜보면 검찰과 관련한 대통령의 공약 이행 성적표는 민망한 수준이다. 파견 검사 숫자는 이명박 정권 때보다 10명쯤 줄었다가 지난해 68명으로 늘어나 원위치됐다. 검사가 나가 있는 정부기관도 2013년 32곳에서 지난해 41곳이 됐다. 검사장은 55명에서 47명으로 줄었지만 검찰의 덩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0년 이래 동결된 검사 정원이 지난해부터 2019년까지 350명 늘어난다. 특수부가 더 생기고, 금융·증권범죄 수사단이 독립했으며 방산비리 전담부서도 신설됐다. 중수부의 후신(後身)인 검찰총장 직속 반부패 수사 TF가 '미니 중수부'라는 건 눈속임이다. 옛 중수부의 수사 지휘·지원 역할을 떼어 맡는 대검 반부패부까지 합치면 전보다 규모가 늘었다고 봐야 한다.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군사력·경찰력이나 정보기관을 쓰는 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합법적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법치(法治)에 앞선 나라들치고 우리처럼 검찰의 권한이 막강한 나라는 찾기 어렵다. 권력을 쥔 쪽에서 걸핏하면 검찰을 앞세워 '무력시위'를 하는 일도 없다. 진짜 법치국가라면 국민이 규범을 준수하도록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쪽에 무게를 둬야 하고, 그래야 '법의 지배'(rule of law)가 관철된다.
방위사업청에 검사를 보낸다고 방산비리가 사라지고, 문화체육관광부에 검사를 파견해야 체육계 적폐를 청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통치권자가 검찰이라는 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법치는 길을 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