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선 의원을 지낸 이철승(李哲承ㆍ94) 전 신민당 총재가 27일 오전 3시 별세했다. 이 전 총재는 대한민국건국단체총연합회 의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등으로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이달 중순 감기 증세로 입원하면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는 전주고와 고려대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해방 이후 전국학생총연맹 대표의장을 지내며 반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54년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한 뒤 전북 전주 지역에서 제3·4·5·8·9·10·1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55년 민주당을 창당했으며 5·16 이후엔 정치규제를 당해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다. 1970년에는 신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경쟁을 벌였다.
국회 부의장을 거쳐 1976년엔 신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고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쇄신법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기도 했다.
1985년 12대 총선 때 신민당을 창당하고 전주·완산에서 당선돼 7선 의원이 되는 한국야당사의 핵심적 인물로 꼽힌다. 건국50주년기념사업회 회장(1998년),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2007~2009년) 등을 지냈다.
지난해 5월엔 지난 2011년과 2013년에 이어 세 번째로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에 선출됐다.
이 전 총재는 특히 반탁(反託·신탁 통치 반대)운동의 의의를 되살리는 데 힘을 써왔다. 그는 2004년 자유민주민족회의 의장 시절 본지 인터뷰에서 “반탁운동은 미국, 소련, 공산당 세력과 3대1로 맞서 싸워 승리해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 정통성을 지켜낸 제2의 독립운동”이라며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대한민국의 체제가 북한보다 우월함이 입증된 것은 반탁운동이 내세웠던 ‘자주·독립·민주·통일’의 건국 이념이 정당했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창희 여사와 아들 이동우 전 호남대 교수, 딸 이양희 UN 미얀마인권보호관, 사위 김택기 전 의원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다음달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