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키나와에서도 남서쪽으로 300㎞ 떨어진 미야코지마(宮古島)에는 그늘이 없었다. 울릉도 면적의 2배쯤(152.9㎢) 되는 이 작은 섬에 일본군 위안소가 17곳 있었다고 한다. 작년 11월 7일 본지 취재진과 TV조선 다큐멘터리 '일본군 위안부' 제작팀이 미야코지마를 찾았다. 서울은 비 내리는 초겨울 날씨였지만, 이 섬의 태양은 뜨거웠다. 옛날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위안부 소녀 10여명은 우물을 긷고 빨래를 하기 위해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30분 넘게 걷고 야트막한 산을 하나 넘어야 했단다. 소녀들은 돌아오다 잠시 쉬어가는 길에 앉아 아리랑을 부르곤 했다. 그 모습을 기억하는 요나하 할아버지는 당시엔 10살 소년이었고, 지금은 긴 눈썹이 하얗게 센 83세 노인이 됐다. 늙고 약해진 그는 "(위안부) 누나들이 알려줬다"며 아리랑을 느리게 불렀다.
"평일엔 우물을 길어오는 (위안부) 누나들을 자주 봤는데, 군인들이 쉬는 토요일에는 아무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군인들이 위안소 바깥까지 줄을 길게 늘어섰어요."
미야코지마를 비롯한 오키나와 전체에 121개의 위안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조선인 위안부 수는 적어도 700명으로 보는 연구가 많다. 전쟁이 끝난 뒤 "오키나와 본섬을 비롯한 류큐 제도에서 147명의 위안부를 조선으로 돌려보냈다"는 미군 기록이 있다. 미야코지마 인근의 도카시키 섬에는 1975년 한국인 최초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혔던 고(故) 배봉기 할머니가 살았다. 배 할머니는 "전쟁에서 총 한 발 맞고 죽어버렸으면 이런 고생 안 할 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는 증언을 남기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991년까지 오키나와에서 살았다.
요나하 할아버지는 "내가 다 기억하고 있는데 (일본) 정부는 없었다고 하는 것에 화가 났다"며 위안부 여성들이 지나다니던 그 길에 10년 전 기림비를 세웠다. 기림비에는 "이 주변에 일본군 위안소가 있었다. 조선에서 끌려온 여성들이 우물에서 빨래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이곳에서 쉬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써 있다. 이날도 미야코지마 주민 3명이 기림비에 찾아와 고개를 숙여 조선인 위안부를 추모했다.
TV조선 다큐 제작팀은 지난 1년간 오키나와를 비롯해 서울, 중국 상하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살고 있거나, 위안소 흔적이 남아 있는 9개국 33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위안부의 처절한 실태를 화면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일본군 위안부' 3부작은 3·1절을 맞아 오는 29일부터 3일 연속 방영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