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와 일본군에 희생된 넋을 위한 '씻김굿'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6.02.25 03:00

    유대인 대량학살 '사울의 아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귀향'
    2차대전 전쟁범죄 다룬 두 영화… 살아남은 자들의 죄책감 전해져
    "넋이라도 고향에 돌아가길 바라"

    세계 2차대전 당시 일어난 전쟁범죄를 다룬 영화 두 편이 이번 주에 개봉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일어난 대량 학살을 다룬 '사울의 아들'(감독 라즐로 네메즈)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바탕으로 한 '귀향'(감독 조정래)이다. 살아남은 자를 통해 참혹한 비극을 폭로하는 두 영화는 감성적인 영웅담과는 거리가 멀다. 살아남은 자들, 그리고 목격자가 된 관객들에게 역사적 책임 의식을 안겨준다.

    ◇사자(死者)를 위한 제의(祭儀)의 영화

    사울은 유대인 수용소의 포로이자 '존더코만도'이다. '존더코만도'는 등에 엑스(X)자가 그려진 옷을 입고 '토막'이라 불리는, 가스실에서 죽은 시신을 수습하고 청소한다. 어느 날 가스실에서 한 소년이 살아남은 채 발견된다. 독일군과 의사는 소년의 입을 틀어막아 숨을 끊어버린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울은 소년의 부검을 담당한 유대인 의사를 찾아간다. 소년이 자신의 아들이니 유대교 전통에 따라 장례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사울이 의식을 거행할 랍비를 찾는 그날 밤, 그의 동료들은 수용소 탈출을 계획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사울의 아들’(왼쪽)과 ‘귀향’에는 같은 대사가 나온다. 아우슈비츠 안의 사울은 아들의 장례를 말리는 동료들에게 “우린 이미 모두 다 죽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소녀 분숙은 “우린 벌써 다 죽은 기야. 여기가 지옥이다야”라고 말한다. /㈜비트윈에프앤아이·㈜와우픽쳐스 제공
    사울은 카메라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울이 움직이면 카메라는 뒷모습을 따라가고, 멈추면 그의 얼굴을 화면 한가득 담는다. 1인칭소설처럼, 관객은 사울의 입장이 된다. 그가 보는 것을 관객도 보고, 그가 듣는 것을 관객도 듣는다. 사울이 아들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수용소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과정에 동참하는 것은 홀로코스트 가상 체험이다. 가스실에서 죽어가는 이들이 벽을 긁는 소리도 들어야 하고, 벌거벗은 채 총에 맞고 구덩이에 묻히는 이들도 봐야 한다. 아들이 죽었다는데 눈물 한 방울 안흘리고 표정엔 미동도 없는 사울의 뒤를 따라다니느라 관객들의 숨이 턱까지 찬다.

    '귀향'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영옥의 1991년과 1943년을 무녀(巫女) 은경을 통해 넘나든다. 신내림을 받은 소녀 은경은 영옥과 함께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죽은 정민의 모습을 본다. 그가 본 정민과 영옥의 모습은 "이미 죽어서 지옥에 간 것처럼" 참혹하다. 영옥은 은경에게 정민을 위한 씻김굿을 부탁한다. 조정래 감독은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라도 고향에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든 영화"라고 했다.

    두 영화는 모두 죽은 자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장례는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자들에게 바칠 수 있는 예의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사울이 아들의 장례를 제대로 치러내기 위한 과정은 스릴러에 가깝다. 그는 감시 철저한 수용소에서 아들의 시체를 숨겨야 하고 랍비도 찾아야 한다.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는 행동은 맹목적이다 못해 어리석어 보인다. 심지어 죽은 아이가 자기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왜 소년의 장례에 모든 것을 걸었을까.

    '귀향'에서 영옥은 정민의 영(靈)이 깃든 무녀를 붙잡고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그는 "나의 몸은 (고향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같이 오지 못했다"고 한다. 가스실을 수없이 청소하면서 시신에 눈길조차 주지 않던 사울은 소년이 죽는 모습을 목격하곤 장례에 집착한다. 살아남은 자, 목격자로서의 죄의식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죄의식은 이들의 눈과 귀를 빌려 관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키워드 정보]
    '위안부'다룬 영화 귀향,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