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으로부터 안심번호로 '암호화'된 당원 명부를 받아든 대부분의 여당 예비 후보들은 22일 "직접 전화를 걸어보니 당원 명부를 더욱 믿을 수 없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전화 10통을 걸면 그중 절반이 우리 지역에 살지 않거나 심지어 결번이었다"며 "이런 상태에서 안심번호를 통한 당원 여론조사를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당원 명부에 대한 불신은 현행 경선 방식인 '당원 30%, 일반 국민 70%'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예비 후보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전략 공천으로 내리꽂고 승복하라고 하라" "100%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낫다" "의원과 위원장의 영향력이 덜 미치는 1만명짜리 일반 당원을 대상으로 조사하자"는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이사 당원' '회사 당원' '백골 당원'…
서울 중구의 김행 예비 후보는 "명부에 나온 번호 20여곳에 전화해보니 어떤 분은 마포에 산다고 하고, 어떤 분은 경기 파주에 산다고 하더라"며 "심지어 결번까지 나오는 등 잘못된 번호가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고 했다. "당원이라고 해서 한참 통화를 했는데 '내가 남대문(시장)에서 일하기는 하는데, 사는 곳은 (서대문구) 홍은동'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대구 지역의 한 후보는 안심번호 당원 명부에서 실제 거주 당원을 찾기가 더 어려웠다고 했다. "(충북) 청주에 산다" "10년째 사용하는 휴대전화 번호인데, 나는 그 지역에 산 적이 없다"는 당원이 있었다. "왜 엉뚱한 데 전화 거는 것이냐. 불쾌하니 번호를 지워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한 당원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간 지 오래인데, 왜 전화해서 괴롭히느냐"고 책망하기도 했고, 전화 통화가 안 돼 확인해보니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는 답이 돌아와 당황했다는 예비 후보도 있었다. 전화를 해봤더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는 '대신 당원'도 있었다.
서울 서초갑의 이혜훈 예비 후보(전 국회의원)는 "20~25년 전 작성한 말도 안 되는 명부를 줘서 황당했다"고 했다. 서초갑 조윤선 예비 후보(전 청와대 정무수석)는 "안심번호 당원 명부를 이용해 안부 인사 문자를 보내니 '내가 아니다' '번호가 바뀐 것 같다'는 답장 문자가 여러 개 왔다"고 했다.
◇"준비 안 된 안심번호…대안 생각해 봐야"
예비 후보들은 기존에 사용하던 100% 국민 여론조사와 선거인단 투표 대신 무리하게 안심번호 당원 여론조사를 도입한 게 화근이 됐다고 주장한다. 현역 의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한다. 한 현역 의원은 "우리는 경선 방식으로 3(당원)대7(일반국민)을 원한다고는 하지만, 유령 당원 등으로 당원 명부에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 양천갑에 출사표를 던진 신의진 의원은 "양천갑의 경우 사전 명부 유출 등 문제도 있는 만큼 경선을 100% 일반국민 상대 여론조사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역 중진 의원은 "유권자가 아닌 사람이 여론조사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지면 경선이 무효가 될 수 있다"며 "불복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서울 중구의 지상욱 예비 후보는 "당의 방침대로 3대7을 고수하되 당원 몫인 3은 기존 방식 중 하나인 현장 투표를 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경선 실무를 담당하는 새누리당 사무처에서도 이미 당원 명부와 관련된 여러 문제점을 지적한 보고서를 지도부에 올렸으나 지도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작년에 후보들이 경선에 대비해 무차별적으로 당원을 끌어온 결과가 지금 드러나고 있다"며 "그런데 그 명부가 안심번호로 암호화되면서 유령 당원 등 부정을 가려내기 더 어렵게 돼버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