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인식부터 해결책 제시까지 디자인으로 접근… "공감·협동하니 아이디어가 퐁퐁 샘솟아요"

    입력 : 2016.02.22 03:00

    '디자인싱킹' 교육 현장 가보니…

    지난 15일 경기 성남시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세미나실. 중고생 약 30명이 수도꼭지, 털실내화와 모자 등 방한용품, 커튼 등을 메모지 위에 그리고 있었다. "정수기 수도꼭지가 너무 낮아 물 마시기 불편하다"는 한 학생은 정수기 꼭대기에 수도꼭지를 붙였다. 이 밖에 난방 효율을 높이거나 물을 절약하는 참신한 생각이 그림으로 표현됐다. 개인당 약 10개의 아이디어가 불과 30분 만에 나왔다. 마지막에는 그림을 한데 모아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느라 머리를 맞댔다.

    미술시간 같은 이 수업은 디자인싱킹을 접목한 '에너지 창의캠프' 모습이다. 한국형 실리콘밸리 조성을 목표로 하는 K밸리(K-Valley) 재단이 진행했다. 디자인싱킹은 문제 인식부터 해결책을 제시하는 모든 단계에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문제해결 방법론이다. 창업, 기업 혁신 등에 주로 활용됐지만, 최근에는 청소년 교육 현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임영근 기자, 공공공간 제공
    ◇그림 그리자 창의적인 아이디어 나와

    디자인싱킹은 협업을 중시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의견을 말해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기 때문이다. 에너지 창의캠프 참가자들은 4~5명씩 팀을 구성하고 과제 수행 전 팀워크를 다지는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다.

    성남 수내중 1년생 5명은 '난방 효율을 높이자'를 해결할 문제로 정의했다. 이는 '어떻게 하면 구역별로 난방을 할 수 있을까'로 구체화됐다. 해결책을 내기 전 이들에게 약 1시간 30분 동안 문제에 대해 조사할 시간이 주어졌다. 다음 단계인 '아이디어 내기'가 1시간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조사 단계의 비중이 꽤 높은 편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가운데 이층침대 위쪽을 사용하는 사람이 겪는 추위 문제가 드러났다. '이층침대의 위쪽을 쓰는 사람에게 효과적인 난방 방법'을 해결할 문제로 더욱 구체화한 계기다.

    1조의 이규빈양은 "한 가지 아이디어에 대해 이렇게 오래 생각해본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디자인싱킹을 소개한 이예지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컨설턴트는 "공감, 팀워크, 사용자경험이 디자인싱킹의 핵심"이라고 귀띔했다. 이성훈 K밸리 재단 사무총장은 "녹색성장진흥원이 하반기에 개최할 '기후변화대응 공모전'에 오늘 완성한 우수 아이디어를 추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도 지난 1월 청소년이 디자인싱킹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재활용을 주제로 로고를 제작하라'는 문제에 디자인싱킹을 접목했다. 프로그램을 이끈 홍성재 공공공간(000간) 대표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우선 로고를 그려보라"고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다음은 시제품을 다양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순서다. 그림을 그려 아이디어를 표현함으로써 창의성을 끄집어낸다. 장나원(서울 광남중 2)양은 "글보다 그림으로 조언을 받으니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물음표를 그려서 '무엇'이나 '모든'이라는 뜻을 전하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한 친구가 'everything'의 알파벳 하나하나를 물음표 모양으로 배치한 그림을 보여줬습니다. 같은 의미를 더 잘 표현해 주는 대안이었죠. 창의적인 조언들을 받아들이면서 혼자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어요."

    ◇문제 발견·창의적 해결책 도출에 도움

    디자인싱킹은 5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공감(Empathy) ▲문제 정의(Define) ▲아이디어 내기(Ideate) ▲시제품 제작(Prototype) ▲시험(Test) 순이다. 최송일 SAP 코리아 혁신팀 부장은 "공감 단계에서 관찰, 인터뷰 등을 통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며 "이 덕분에 구체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다"고 했다.

    디자인싱킹을 경험한 교사와 학생들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기정(선린인터넷고 2)군은 지난 2015년 한 학기 동안 디자인싱킹 수업을 듣고 노숙자 자립을 돕는 앱을 개발했다. 그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데 디자인싱킹이 유용했다"고 밝혔다.

    이태경 이천 양정여고 교사는 2014년 말 디자인싱킹을 처음 접하고 이듬해부터 동아리 활동에 적용했다. "동물원 관람 문화를 바꾸려는 아이들에게 현장을 관찰하고 관계자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조언했어요. 자연스럽게 디자인싱킹의 핵심을 접목시켰죠. '시민들이 정확한 관람 정보를 알지 못한다'는 문제를 깨닫자 아이들이 올바른 관람 정보를 알리는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처음 생각했던 해결책과 달랐지만 더욱 구체적이고 적합한 해법이었죠. 아이들이 진정한 협업을 느꼈다고 말한 것도 큰 보람입니다."

    ◇교육현장에 확산되는 디자인싱킹

    올해 디자인싱킹은 초·중·고 교육현장에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지난 2003년 교사 10여 명이 모여 시작한 행복한교육실천모임(이하 행복교실)은 '디자인싱킹 교원 직무연수' 프로그램을 이르면 올해 상반기에 등록할 계획이다. 행복교실 회원들이 지난해 학교 현장에서 '두런두런 앙트러프러너십(Do-Learn Entrepreneurship)' 동아리 교육에 디자인싱킹을 적용했던 인연에서 시작됐다. 김정희(서울 중동고 커리어코치) 행복교실 운영위원은 "청소년에게 지역사회나 학교에서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싱킹을 적용하고 효과를 느꼈다"며 "더 많은 교사에게 디자인싱킹을 알리고 싶어 직무연수 과정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거꾸로교실 수업을 전파하는 교사 모임 '미래교실네트워크' 역시 디자인싱킹을 수업에 활용할 방법을 고민 중이다. 지난해 12월 미래교실네트워크 소속 교사 100여 명은 디자인싱킹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후 인천 지역 독서모임에서는 디자인싱킹을 주제로 한 책을 읽고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대식(인천경서초 교사) 미래교실네트워크 인천 지역장은 "디자인싱킹을 접하고 곧바로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며 "대구 지역에서는 자발적으로 디자인싱킹 연구 모임을 계획할 만큼 교사들의 관심이 대단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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