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천국 홍콩에서도 쇼핑 명소로 유명한 센트럴 퀸스로드. 이곳에는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의 홍콩 최대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버버리는 최근 2개 층 규모인 이곳 매장을 한 개 층으로 축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 소비시장의 큰손인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지난해 4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20%나 추락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댈 것은 중화권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중국의 설) 특수였다. 하지만 음력설인 지난 8일 홍콩 사상 최악의 과격 시위가 일어나 기대를 악몽으로 바꿔버렸다.
둬웨이(多維)와 인민일보 등 중화권 매체는 15일 "중국 관광객들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콩이 과격 시위로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홍콩여유(旅遊)발전국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을 찾은 중국 관광객은 4580만명이었다. 2014년 4720만명에 비해 140만명이나 줄었다. 시간이 갈수록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분기에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중국 관광객들이 8% 늘었다. 2분기엔 증가율이 1%로 떨어지더니 3분기와 4분기에는 각각 7%, 12% 급감했다. 연말인 12월 한 달만 따지면 2014년 12월에 비해 무려 15.5%나 줄었다. 그 여파로 홍콩의 소매 매출은 10개월 연속 전년 대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들의 홍콩 외면 현상은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인 시트립(Ctrip)이 올 춘제 시즌 중국인들의 해외여행 상품 예약 상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위에 올랐던 홍콩은 올해엔 태국 푸껫과 싱가포르에도 밀리며 6위로 내려앉았다.
문제는 홍콩을 제외한 해외에서는 중국인들이 왕성한 구매욕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하이의 민간분석기관인 차이푸핀즈옌지우위엔(財富品質硏究院)은 최근 "중국인들이 지난해 전 세계 명품의 46%를 구매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인들은 명품을 사는 데 1168억달러(141조원)를 썼고, 그중 78%인 910억달러가 해외에서 소비됐다.
중국인들 눈에 홍콩의 매력이 떨어진 데는 일본과 한국 등 경쟁국의 치열한 중국 관광객 유치 노력, 홍콩 달러 강세로 인해 상대적으로 비싼 명품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10월 50대 중국인 관광객이 홍콩 현지인 가이드와 시비 끝에 폭행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분히 우발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2014년 홍콩 민주화시위 이후 색채가 짙어진 반중(反中) 분위기와 맞물려 "왜 돈 내고 그런 홀대를 받느냐"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춘제에 홍콩 역사상 유례없는 폭력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더구나 그 배후에 반중 단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 매체들은 사건의 전개 상황을 시시각각 속보로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때보다 더 긴 입장문을 발표하고, 홍콩특구 정부에 '엄정 대처'를 요구했다.
홍콩의 경우 관광업이 전체 GDP의 5%를 차지한다. 홍콩을 찾는 전체 관광객의 70% 정도가 중국 관광객이다. 이들을 붙잡지 못하면 관광·유통 경기가 살아날 길이 없는 셈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계속 홍콩을 외면한다면 '불황 심화→홍콩 주민들의 불만 증폭→반중 정서 고조→중국 관광객 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쇼핑 천국 홍콩이 이래저래 곤경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