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오사카(大阪) 변두리 출신의 권투선수였다. 열일곱 나이에 프로복싱에 뛰어들어, 대전료를 받아 생계에 보탰다.
함께 사는 가족이라고는 외할머니밖에 없는 결손 가정의 청년에게 권투는 희망이었다.
한 경기 3회전에서 4회전, 6회전까지 점점 실력이 늘어갔다. 언젠가 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두르리라는 꿈도 커져갔다.

    • 구성= 뉴스큐레이션팀

'빛과 콘크리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구성= 뉴스큐레이션팀
입력 2016.02.13 07:00 | 수정 2016.02.15 10:57

글러브를 벗고 취직을 했다. 공고를 졸업한 스무살 청년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별볼일이 없었다. 불 같은 성미에 답답한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며칠 밤낮을 고민하다 집 짓는 일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동네 목공소는 그의 놀이터였다. 문득 목수가 외할머니집 지붕에 만들어 준 창문을 통해 쏟아지던 새하얀 빛과 창문 너머로 펼쳐진 파란 하늘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서울 도심에 세운 최초의 건축물
 
/안도다다오건축연구소 제공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로 유명한 일본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인생 드라마는 이렇게 시작한다. 1960년대 초반 뒤늦게 건축업에 뛰어든 그는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현장에서 독학으로 익혔다. 동네 가게의 인테리어나 가구를 만드는 일로 기초를 닦았고, 유명 건축가의 책을 닳도록 반복해 읽었다. 도면 하나하나를 베껴 그리기도 했다. 스물네살 되던 해에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을 둘러봤다.


이렇게 성장한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출 콘크리트 기법(외장재 없이 건물의 콘크리트벽을 그대로 드러냄)과, 실내에서 자연광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건물이 자연환경과 지역적 특색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하는 신선한 건축 양식을 내세워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만의 독특한 건축 설계에 반대하는 정부 규제 당국이나 건축주와 잦은 승강이를 벌이면서 '투쟁하는 건축가'라는 이름도 얻었다. 1969년부터 최근까지 그가 휩쓴 세계적 건축상은 150여개. 그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이다. ▷기사 더보기

'일본의 가우디' 안도 다다오가 콘크리트 건물 고집하는 까닭


지난 4일 일본 오사카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건축연구소’에서 안도 다다오 선생을 인터뷰했다. 세계적으로 바쁘게 활동하는 그이기에 인터뷰가 가능할지 걱정했으나 조선 풍수학인의 관점에서 “한 수 배우고 싶다”는 편지와 오사카 시립대 노자키 미쓰히코(野琦充彦) 교수의 ‘신원 보증’이 통했던 듯하다.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그가 독학으로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었다는 이력과 건축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존경받을 만하다.


필자가 안도 선생의 건축 세계를 알게 된 것은 답사 중 조우한 두 건축물 덕분이었다. 하나는 제주 섭지코지에 있는 건축물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였다. 지니어스 로사이는 본래 라틴어로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란 뜻이다. 오래전 노르웨이 출신 노베르그―슐츠가 쓴 책 ‘Genius Loci’가 ‘장소의 혼’이란 이름으로 국내 출간되었기에 그 단어의 의미를 알고 있던 터였다. 동양의 풍수적 관념과 흡사하다.

짓다 만 듯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 유행시켜… "건축은 예의" 직원들 스파르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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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휘닉스아일랜드 미술관 '지니어스 로사이'. /김신영 기자

또 하나는 강원도 원주 어느 산골에 있는 ‘뮤지엄 산’이라는 박물관이다. 산골은 골바람이 심하다. 산 정상이라 물이 있을 수 없다.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건축물이 세워졌다. 건축물 외부 높은 벽이 인상적이었다. 또 건축물 주변에 물(연못·澤)을 채워놓았다. “바람을 갈무리하고 물을 얻는다(藏風得水)”는 고전적 풍수 정의를 건축물로 구현하고 있었다. 또한 “산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함이다(山上有澤咸)”라는 주역의 함괘(咸卦)가 형상화됨을 보았다. 주역에서 산과 연못은 소년과 소녀를 상징한다. 젊은 소년과 소녀가 만났으니 얼마나 기뻐하고 감동하겠는가. 바로 그것이 함(咸)이란 뜻이며 동시에 감(感), 즉 느껴서 감동한다는 뜻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느끼고 감동하여 즐거워한다. 이 역시 안도 선생 작품이었다.


안도 선생은 필자에게 한국에서 만들었거나 진행 중인 작품(건축)물들을 가지고 설명했다. 한국의 클라이언트(건축 의뢰 건물주)들은 주로 재벌가들이었다. 필자가 준비한 12개 항목의 질문을 예정된 1시간에 모두 소화할 수 없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도 연구원 소고 간야(十河完也) 선생이 보충 답변을 해주어 ‘안도 다다오의 건축과 풍수관’을 충분히 논할 수 있었다.


안도 선생은 “건물의 최종 목적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여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장소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늘 지형지세를 깊이 읽어 땅의 문맥과 그 땅이 가지고 있는 성격과 힘을 아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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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가 지은 서울 종로구 혜화동 JCC 아트센터. /오종찬 기자

풍수에서 땅을 보고 혈(穴)을 찾고(尋) 만드는(作) 과정과 전적으로 상통한다. 혈이란 좋은 기가 모인 곳을 말한다. 좋은 기가 모이면 사람들이 절로 꼬인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돈·정보·권력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명당발복의 터와 건물이 된다. 안도 선생의 작품이 그렇다. 그의 작품들을 보러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은 그가 유명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氣)이 있기 때문이다.

안도 선생과의 면담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터뷰 장면 하나가 선연히 떠오른다.
“왜 굳이 콘크리트 건물을 고집하십니까?”(필자)
“아무나 쓸 수 있는 값싼 재료(시멘트)를 가지고 아무도 보지 못한 건물을 만들고자 함입니다. 바람(風)·물(水)·빛(光)은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콘크리트 건물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바꾸는 자연스러운 도구입니다.”(안도 다다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안도 다다오, 죽은 섬을 숨쉬게 하여 세상을 숨멎게 하다


일본의 다도해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에 있는 두 섬 나오시마(直島)와 아와지시마(淡路島)의 공통 분모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다. 안도는 토사와 광물 채취로 황폐된 두 섬을 '문화'라는 산소호흡기를 달아 소생시켰다. 예술의 흔적조차 없었던 두 섬은 이제 전 세계 예술 애호가들의 '문화의 성지'가 됐다.

쓰레기더미 위에 핀 예술의 섬… 느릿느릿 걷다보면 여기가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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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시마 지추 미술관. /베네세미술관 제공

◆외딴 섬에서 '예술의 낙원'이 된 나오시마


인구 3900명의 외딴 섬 나오시마. 이 작은 섬을 찾는 관광객이 한 해 20여만 명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풍경이다. 당시 나오시마는 금속제련산업으로 인해 곳곳이 민둥산이었다. 나오시마를 바꾼 것은 출판기업인 '베네세'가 1989년 시작한 '아트 프로젝트'. 베네세는 나오시마를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된 '문화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안도 다다오에게 그 중추 역할을 부탁했다.


2004년 완공한 지중 미술관은 안도 건축의 백미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걸작. 능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미술관을 지하에 파묻은 발상에 놀라고, 적은 작품으로도 감동을 극대화하는 연출 기법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미술관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조각가 월터 드 마리아, 빛을 이용한 작가 제임스 터렐, 단 세 작가의 작품을 위한 공간이다. 스스로 '제4의 아티스트'라 말했듯 안도는 작품을 위한 전시장인 동시에 건축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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