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국희 특파원

"조심하라. 모기가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

3일 찾아간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보건소 건물 현수막에 큼지막한 모기 그림과 함께 내걸린 글귀다. 그 아래로 '화분 밑받침을 자주 닦아라' '양동이는 뚜껑으로 덮어둬라' 등의 메모들이 빼곡하게 나붙어 있었다. 소두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지카(Zika) 바이러스의 매개체 '이집트 숲모기'의 번식을 막기 위한 예방 수칙들이다.

연초부터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는 이번 지카 바이러스의 시작점으로 지목된 브라질. 그 최대 도시 상파울루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에서 브라질인 특유의 여유와 낙천성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나도 곧바로 지카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다'는 근심과 불안이 비쳤다.

특히 이번 주말 브라질 최대의 문화 행사이자 대표 관광 상품인 카니발 시즌으로 돌입하면서 오히려 축제가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양상이다. 세르히우 시메르만 브라질 전염병학회장은 "카니발에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거나 해충 퇴치제를 뿌리지 않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쓰레기 배출량도 급증해 지카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경고했다.

상파울루 시내의 한 우체국 앞에는 상자 수백 더미가 쌓여 있었다. 시 당국이 카니발을 앞두고 '지카 방어 작전'의 일환으로 비치해둔 증정용 콘돔이다. 이렇게 시내 곳곳에 놓아둔 콘돔은 총 500만개다. 현지 보건 단체인 SUS 관계자는 기자에게 "축제 기간 동안 브라질을 찾는 외국인과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심 외곽의 주택 밀집 지역으로 접어드니 마치 쿠데타 직후의 전시(戰時)를 방불케 했다. 골목 골목마다 짙은 녹회색 위장 무늬 군복에 베레모를 쓴 군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물탱크나 모기장 등을 점검하고 있었다. 이렇게 군부대에서 방역 차출에 동원된 군인들이 전체 병력의 60%인 22만명에 달한다.

지난달 31일‘브라질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항구 도시 헤시피에서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시민들이 이번 주말로 예정된 카니발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지카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꼽히는 헤시피는 강이 자주 범람하고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빈민촌이 많아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 숲모기가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세계 보건 관계자들은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브라질 카니발로 인해 지카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병력 누수까지 감내할 정도로 브라질 연방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1일 세계보건기구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직후 정부도 "필요할 경우 보건 당국이 방역을 목적으로 개인 사유지에도 진입하도록 허가한다"는 내용의 특별 행정명령을 내렸다. 사실상 '보건 계엄령'이었다.

상파울루 지역은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한여름이다. 뙤약볕에도 아랑곳없이 약국 간판이 달린 곳마다 모기 퇴치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약국을 찾은 한 주민은 "원래 이맘때 모기가 많긴 했지만, 모기 퇴치제를 들여다놓기가 무섭게 동나는 건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고 말했다. 감염자의 86%가 몰린 동북부 헤이시 지역의 최공필(77) 한인회장은 "1주일에 모기 퇴치제 한 통씩을 쓴다"며 "날이 더워 긴소매 옷을 입지 못하기 때문에 피부는 물론 옷 위로도 퇴치제를 뿌려야 한다"고 했다.

콘돔 무료로 나눠주는 보건소 - 브라질 상파울루 한 보건소 앞에 설치된 함 안에 무료 콘돔이 쌓여 있다. 요즘 상파울루에선 국공립 병원과 보건소는 물론 우체국에까지 증정용 콘돔이 넘쳐 난다. 임신부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될 경우 소두증 기형아를 낳을 우려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지카 바이러스의 진원지인 브라질에선 임신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모기 퇴치제 1개 값은 대략 35헤알(약 1만원). 지난 1년간 경제난으로 인해 헤알화 가치가 29% 가까이 폭락했다. 공포심으로 일부 주민이 닥치는 대로 사재기를 하면서 시장 가격보다 갑절 이상 치솟는 지역까지 속출했다. 빈민들이 기댈 곳이라곤 의학적으로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각종 민간요법이다. '알코올 500mL와 계피 10g, 아몬드유 100㎎을 섞어 피부에 바르라' '영·유아에게는 라벤더 오일을 로션에 섞어 바르라'는 민간요법이 소문을 거쳐 SNS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가난한 서민들이 감염 위협에 노출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보건당국 관계자는 "정부가 빈곤 계층에게 나눠줄 모기 퇴치제 등 각종 보급품을 현재 구입하고 있는 단계로 안다"고 했다. 그러나 언제 어떤 식으로 보급될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확실히 아는 현지인은 만나지 못했다.

작년 10월 이래 브라질에서는 약 150만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돼 이 중 소두증 의심 사례가 4783건, 소두증 확진 사례는 404건으로 파악됐다. 3일에는 수혈에 의한 바이러스 감염 사례도 2건이 보고됐다. 이런 구체적 숫자는 임신부들을 "내 아이가 기형아로 태어날 수 있다"는 공포로 내몰고 있다. 임신 3개월째인 마리아(24)씨는 "정부가 시키는 대로 모기 퇴치제를 뿌리고 몸에 바르는 방법 외에는 바이러스 백신도 없다고 하니 더욱 막막하다"고 했다.

"지카 막아라" 머리 맞댄 南美 13개국 - 3일(현지 시각)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의 메르코수르(남미 공동 시장) 본부에서 남미 13개국 보건 장관이 모여 지카 바이러스 확산 방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지카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되는 이집트숲모기 박멸을 위한 공동 방역 대책 등을 논의했다.

[지카바이러스 모기+수혈+성관계 통해 감염 가능… 대표 증상은?]

[브라질 최대 문화행사이자 대표 관광상품인 카니발은?]

믿을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임신부들이 고려하는 처방은 '낙태'. 독실한 가톨릭 국가인 브라질에서 엄격한 금기이지만, 지카 바이러스로 인해 금기가 깨지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됐다.

상파울루 벨렘 지역의 L국립 산부인과는 상파울루 법원의 허가를 받아 유일하게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이다. 3일 찾은 이 병원 진료실과 앞마당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임신부들로 북적였다. 소두증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나왔다는 예비 엄마 루시(23)씨는 기자에게 "심각한 병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며 "내 아이가 소두증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낙태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지카 바이러스 진원지인 동북부 헤이시 지역에서 남쪽으로 3000㎞ 떨어진 상파울루까지 불법 낙태를 위해 산모들이 3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사례들이 잇따라 전해지고 있다. 의료 시설이 상대적으로 좋은 곳을 찾아 떠나는 '원정 낙태'인 셈이다. 한 한인 의사는 "공항부터 산모를 태워와 불법 낙태를 해주는 조직이 암암리에 있다"며 "개중엔 무면허 시술도 많아 인명 사고도 종종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소두증 낙태'를 자유롭게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은 당사자인 임신부를 넘어 사회 전반과 나라 바깥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수도 브라질리아의 일부 법학자는 대법원에 "임신 여성의 태아가 소두증에 걸린 것이 확인될 경우 낙태를 허용하게 해달라"는 청원을 내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