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사는 건 쉽지, 사랑에 빠지면…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6.02.04 03:00

    [캐롤]

    1950년대 '레즈비언'의 이야기
    여우주연·조연상, 각색상 등 아카데미 6개 부문 노미네이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란 시인은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고 노래했다. 1950년대, 뉴욕 맨해튼의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루니 마라)가 캐롤(케이트 블란쳇)을 보는 순간이 딱 그랬다. 테레즈의 눈동자는 캐롤에게 붙들려서 그를 제외한 모든 게 희뿌옇게 보였다. 캐롤은 테레즈에게 딸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산다. 실수인지, 고의인지 알 수 없지만 캐롤은 장갑을 테레즈 앞에 두고 가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토드 헤인즈의 '캐롤'은 사랑에 빠진 이들의 시선에 관한 영화다. 첫모습에 반하는 몽롱한 눈빛부터 사랑하는 이를 몰래 쳐다보는 두려움의 눈빛, 그의 손이 닿을 때 파르르 떨리는 눈빛, 사랑을 나눌 때의 벅찬 눈빛까지.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1952년 가명으로 출간한 소설 '소금의 값'을 영화로 옮겼다.

    영화‘캐롤’의 한 장면. 캐롤(오른쪽·케이트 블란쳇)이 테레즈(루니 마라)에게 향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영화‘캐롤’의 한 장면. 캐롤(오른쪽·케이트 블란쳇)이 테레즈(루니 마라)에게 향수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더쿱·CGV아트하우스 제공
    부유한 캐롤에게는 이혼을 앞둔 남편과 딸이 있고, 가난한 테레즈에겐 유럽에 함께 가자는 건실한 남자친구가 있다. 부유하고 가정이 있는 중년과 가난하고 미래가 불안정한 젊은이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새로울 게 없다. 하지만 1950년대 레즈비언의 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21세기에도 녹록지 않은 이들의 사랑이 60여년 전에는 어땠을지 영화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동성애자인 하이스미스도 90년대 들어서야 이 작품의 작가가 자신임을 밝힐 수 있었다. 캐롤의 남편은 캐롤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하고, '윤리조항'을 어겼단 이유로 양육권도 뺏으려고 한다. 테레즈의 남자친구는 '동성애'의 개념 자체도 잘 모른다. 하지만 '캐롤'이란 영화는 사랑이 이런 고난에 가로막혔다고 울며불며 호들갑을 떨거나 청승맞게 불평 불만을 늘어놓지 않는다. 관객에게 눈물과 한숨을 단 한순간도 허락하지 않는 냉정함으로 꾹꾹 눌러담은 감정은 언제 터질지 몰라서 부글부글 끓는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영화를 우아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50년대를 충실하게 재현한 덕도 있다. 당시 분위기를 잡아낸 미술과 의상은 물론, 50년대 재즈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영화의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나온다. 영화에서 세 번이나 언급된 곡은 빌리 할리데이의 '이지 리빙(Easy Living)'. 테레즈는 캐롤의 집에 놀러갔을 때 이걸 피아노로 치고, 나중에 이 노래가 담긴 음반을 캐롤에게 선물한다. 두 사람이 여행 중에도 함께 듣는 이 노래의 가사는 "사는 건 쉽지, 사랑에 빠지면"이라고 시작한다.

    사랑에 빠진 뒤, 캐롤과 테레즈의 일상은 순탄치 않았지만, 인생은 더 살기 쉬워졌다. 이들은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바라보게 됐고, 사랑하는 이와 마주 보게 됐다. '캐롤'은 이들이 주고받는 시선에서 끝난다. 테레즈의 눈빛은 캐롤을 찾고, 이런 테레즈를 캐롤이 본다. '이지 리빙'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후회하지 않으리, 내가 바친 세월을. 사랑에 빠지면 베푸는 건 쉽지. 당신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뭐든 하리."

    29일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란쳇)과 여우조연상(루니 마라), 각색상, 촬영상, 음악상, 의상상 후보에 올랐다. 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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