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이야기

다양한 공간이 다양한 사람을 만든다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은 외관과 평수를 자랑하는 획일화된 주거 공간, 바로 우리나라 아파트다.
우리나라 주거·교육 공간의 현실은 어떨까? 이제는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다시 해볼 때다.

다양한 공간이 다양한 사람을 만든다

입력 2016.02.15 09:02 | 수정 2016.02.15 11:05

전국 어디를 가도 똑같은 외관과 평수를 자랑하는 획일화된 주거 공간, 바로 우리나라 아파트다. 이현욱 소장은 “지금은 유니크(Unique: 유일무이한, 독특한)의 시대인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며 공간의 다양성을 거듭 강조한다. 이지성 작가 역시 “대화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근본적 원인을 파고들면, 거기에는 단절된 구조의 주거 공간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주거·교육 공간의 현실은 어떨까? 이제는 공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다시 해볼 때다.

약 석 달 전, 이지성 작가-차유람 부부의 ‘인문학적 집짓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국내에 ‘땅콩집’ 열풍을 불러일으킨 이현욱 소장이 설계를 맡았고, 이 과정이 본지에 연재로 게재되고 있다. 우리가 이 집에 주목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친환경 시멘트를 사용하고, 목조주택이며, 격대교육의 장을 만드는 ‘인문학적 주거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달에는 지난 회에 언급한 방사능 시멘트의 현실, 목조주택의 오해와 진실은 물론 주거 공간과 교육 공간이 아이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해봤다. 그전에 먼저, 한창 기초 공사가 진행 중인 건축 현장을 찾았다.

/사진 방문수.

오늘 보니 기둥과 뼈대 세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현욱 한파에 집을 짓는 게 어렵다. 목조주택은 상관이 없는데 기초 작업은 콘크리트로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콘크리트 양생을 위해서는 물을 섞는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물이 얼어서 콘크리트가 푸석푸석해지고 부러질 수 있다. 지난 주말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다기에 콘크리트를 쳤는데, 월요일엔 다시 추워진다고 해서 밤에 이곳에 와서 비닐을 덮고 다시 낮에 와서 비닐을 걷어놓기를 반복했다. 고생 많이 했다.
이지성 제가 많이 괴롭혔다.(웃음) 한파주의보가 내려졌는데 갑자기 시멘트를 치겠다니까 너무 당황스러운 거다. 내가 공사를 턱없이 빨리 하자고 했나? 3월로 미룰까도 싶더라. 근데 계속 괜찮다고 하셨다. 오늘 와서 보니까 콘크리트가 잘 굳었다.
이현욱 사실 레미콘은 겨울에 치기 좋다. (방사능 폐기물 등) 불순물이 많아서 잘 얼지 않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는 친환경 시멘트를 사서 물을 붓고 직접 비벼서 깔려고 하니까 더 힘든 거다.

/사진 방문수.

친환경 시멘트를 현장에서 비비는 작업은 얼마나 걸렸나?

이지성 한 1주일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금방 마무리됐다.
이현욱 원래 주차장, 본채, 안채까지 세 군데 바닥 작업을 해야 하는데, 인부들이 이틀은 족히 걸린다고 하더라. 그래서 본채만 작업했더니 반나절 만에 끝났다. 포클레인이 10번쯤 섞고 퍼서 까니까 금방 끝났다. 원래 (시멘트를 비빌) 들통이 필요하다. 한데 들통 빌려주는 곳이 없어 땅을 판 다음 비닐을 깔고 그 안에서 비볐다.

나머지 바닥 작업은 언제쯤 진행되나?

이지성 나머지 두 곳은 전부 나무집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현욱 기초를 콘크리트로 하지 않고 나무로 하겠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그런 공법으로 집을 짓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짓는 집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도 바닥은 콘크리트를 쳐야 튼튼하지’라고들 생각한다.
이지성 그렇게 하면 춥지 않을까 걱정돼서 소장님께 말했더니 절대 걱정 말라고 하더라.(웃음) 저도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왕 목조로 짓는 거, 기초까지 전부 목조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방문수

“사교육비 1위 국가, 정작 교육 공간은 형편없다”

교육부가 밝힌 우리나라 사교육비의 총 규모는 18조6천억원(2014년 기준), 한국교육행정학회 보고에 따르면 실제 연간 사교육비 총액은 30조를 웃돈다고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이어 사교육비 1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정작 교육 공간에 대한 투자나 배려는 거의 없다. 목조로 학교 짓기를 지원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방사능 시멘트로 학교 짓기에 바쁘다. 이지성 작가가 교사 시절 들여다본 교실 풍경도 ‘닭장처럼 갇힌 공간’에 다름 아니다.

집이라는 주거 공간에 이어 교육 공간, 대표적으로 학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학교가 물리적, 심리적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되려면 어떤 변화들이 필요할까?

이현욱 일본을 예로 들어보겠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학교가 전부 콘크리트로 지어진 나라다. 그런데 이 학교들이 노후화돼서 현재 부수고 재건축을 하는 과정인데, 일본 정부가 목조를 권장하고 있다. 어떻게?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준다. 아무래도 단독주택이 아닌 (대형 건물의) 경우에는 목조가 콘크리트로 짓는 것보다 공사비가 더 비싸다. 그 차액을 정부가 대주는 것이다.


실제 교육 현장에서 교사로 근무했던 작가님이 보기에 우리나라의 교육 공간은 어떤가?

이지성 제가 초등학교 교사를 7년 넘게 했다. 그때 느낀 우리나라 교육 현장의 문제는, 사각형으로 획일화된 공간에 너무 아이들을 몰아넣은 것 같다는 것이다. ‘이건 닭장이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인간적이라는 느낌. 교실이 전혀 스토리가 생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런 점이 늘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인데, 2008년 교사를 그만두기 전까지도 천장에 선풍기가 달려 있는 교실이 많았다. 선풍기를 떼고 에어컨을 설치하더라도 여름에 에어컨을 못 켠다. 모든 교실에서 에어컨을 틀면 다운되니까.
이현욱 인프라까지 고치지는 못하고 기계만 달아놓은 격이다.
이지성 정말 황당한 건 뭐냐면, 다른 교실은 에어컨이 다운되어도 교장실은 에어컨이 돌아간다. 가장 시원한 게 교장실, 그다음이 교무실, 그다음이 교사 연구실, 정작 교실은 찜통이다. 그래서 당시 속옷을 2개 갖고 다녔다. 교실에서 나오면 속옷이 늘 땀으로 젖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교육비는 세계 1위로 교육에 미쳐 있는 나라인데, 정작 제대로 된 교육 공간은 없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아이들이 운동장에 나가면 나무 그늘 아래 벌떼처럼 모여 있다. 그 아이들이 닭장 같은 교실 안에서는 너무 스트레스가 많다. 제가 학교에서 ‘피노키오 상담실’이라는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정신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수없이 상담했다. 요즘 데이트 폭력 뉴스가 많이 나온다. 나는 그 요인이 어릴 때부터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학업 스트레스에, 학원-집 외에는 단절되어 있고, 교육 공간도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용인에 목조주택(땅콩집)을 짓고 사는 소장님의 아이들은 어떤가? 

이현욱 어떻게 보면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다. 놀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사실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가르치기가 너무 어렵다.(웃음)
이지성 단독주택에 사는 애들도 공부 잘하는 애들 많다.(웃음)
이현욱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면 공부 잘하는 애들은 달리기도 1등을 한다. 경쟁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우리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어려서부터 경쟁을 하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 “엄마 나 행복해”라고.
이지성 오늘도 뉴스에 나왔는데, 요즘은 서울대 나온 애들도 취업이 안 돼서 3년씩 논단다. 내가 만약 1980년대에 이런 얘기(‘아이를 생각하면 인문학적 집을 짓자’)를 했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근데 지금은 현실을 보자는 거다. 옛날처럼 서울대 나오면 취직도 잘되고 평생 보장받는 사회라면 가야겠지만, 지금은 서울대를 나오든 아니든 다를 게 없다. 그럴 바엔 아이가 행복한 시절을 보내면서 자아를 발견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게 낫지 않겠나.
이현욱 우리 어릴 때 생각해보면 마을이 아이를 키운 것 같다. 공동체가 긴밀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아파트는 그게 안 된다. 제가 서울시 마을공동체 의원이다. 모임을 주선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안 모이려고 한다. “집값 오르는 얘기인가요?”라고 묻고는 아니라고 하면 안 온다.

마을공동체는 어떤 일을 하나?

이현욱 층간소음도 마을의 문제지 않나. 그건 건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위아래 집이 친해지면 해결이 된다. 이해의 문제다. 이해하려면 친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떡 돌리기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그런데 초인종 누르면 뭐라고 하는 줄 아나?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란다.(좌중 웃음) 얼굴 한번 보고 친해지러 갔더니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라니. 정말 심각하다. 이웃을 너무 모르고 관심도 없다. 그걸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쉽지가 않다.

/사진 방문수.

공간도 사람도 획일화된 대한민국
“이제는 주거 공간의 또 다른 본질을 고민할 때”

이번 달 이현욱 소장이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중 하나가 ‘다양성’이다. “똑같은 공간이 똑같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그저 흘려듣고 말기에는 너무나 정곡을 찌르는 우리의 현주소다.

/사진 방문수.

이현욱 소장님도 교육 공간을 설계한 적이 있나?

명동에 있는 계성초등학교나 인천의 계성여고 체육관과 식당동 등을 리모델링한 적 있다.

교육 공간을 설계할 때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나?

이현욱 ‘다양성’이다. 학교가 너무 획일화되어 있지 않나. 근데 다양성을 살려 설계를 해도 교육청에서 원하지 않는다. 외장재를 시멘트 블록으로 만들어 카페처럼 설계했더니, 식당동을 그렇게 만들면 어떡하느냐고 난리가 났다. 노출 콘크리트 위에 흰색 페인트칠을 하라고 하더라. 또 천장에 텍스타일은 왜 안 쳤느냐고 난리가 났다. 텍스를 쳐야 위생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텍스를 치면 그 안에까지 청소를 잘 안 하게 된다. 실제로 기존의 텍스를 걷어내 봤더니 엄청난 먼지와 곰팡이, 심지어 죽은 쥐까지 나오더라. 그러느니 천장을 노출시켜서 더러운 게 육안으로 보일 때 바로바로 청소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낫지 않나.

변화를 시도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는 것 같다.

이지성 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고 본질을 추구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현욱 (교육청이 원하는 대로 만들면) 결론은 전국의 학교가 다 똑같다. 건축가의 설계 스타일에 따라서 학교가 달라야 맞는 게 아닌가. 다양한 사고를 바탕으로 다양한 학교가 설계돼야 하지 않겠나. 한데 ‘제발 이대로 좀 해’라는 매뉴얼을 준다. 그럼 건축가를 부를 이유가 없다.

결국 학교는 설계대로 완성이 됐나?

이현욱 교감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타협을 봐서 결국 완성이 됐다. 완성 후에 학생들 반응이 정말 좋았다. ‘우리 학교야’ 하면서 사진 찍어 SNS에도 올리고.

그 후로도 교육 공간을 설계할 때 안타까운 점이 많았나?

이현욱 교육청과 항상 문제가 생긴다. 그때마다 느끼는 건, 우리나라는 획일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해외의 사례는 어떤가?

이현욱 기본적으로 공간 배치가 완전히 다르다. 이를테면 운동장이 학교 건물에 붙어 있지 않고 외곽에 있다. 운동장은 운동장으로서의 독립된 공간이라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생님이 운동장을 감시하기 좋게 배치되어 있다. 교장이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땡볕에 세워놓고 연설을 한다. 외국에는 교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지성 전체적인 학교 구조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서당이나 성균관이다. 성균관은 교탁이 없을뿐더러 자유로운 대화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근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군인을 양성하기 위한 기관처럼 학교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번호가 있고, 출석 체크를 하고, 종례가 있고 조회가 있다. 선생이 일방적으로 감시하고 지시하도록 만들어졌다. 군대가 그렇다. 그런 시스템에서 교육받아야 전쟁터에 나가서도 장교가 지시하는 대로 군말 없이 하기 때문에 그런 학교를 세워놓은 것이다. 일제강점기가 끝나면 그런 부분들이 개혁돼야 하는데, 친일파들이 정권을 잡고 기득권층에서 완전히 청산이 안 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지금의 교육 제도는 ‘시키는 것만 하는 바보를 만들어내는 제도’인 것이다. 그런 학교의 시스템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 게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안 그런 아파트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아파트는 모두 다 분리시켜놔서 연합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이현욱
집이란 건 다양해야 하는데 어딜 가나 25평, 33평, 44평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느 아파트 몇 평에 사니?’라는 질문이 나오고 그걸로 상대방의 사는 수준을 가늠한다.

이지성 많은 교사들부터 아파트라는, 앞집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구조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폐쇄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학생들과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화의 실종’의 원인을 파고 또 파고 들어가면 주거 공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단독주택이 만능이라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웃을 찾게 되고, 친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안에서 살면 사람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주거 공간이 열린 구조로 바뀌면 교육적·사회적 측면에서 많은 긍정적인 변화들을 불러올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이지성 우리가 여태까지는 그런 주거 공간에 대한 고민들을 안 해왔다면, 이제는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전체적인 문화 자체를 규정하는 게 집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 결국은 주거 공간이 우리의 성품, 성격을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옆집 사람과도 인사 안 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람이 사회에서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이현욱 제일 중요한 건 공간의 다양성이다. 어딜 가든 학교와 집의 모양과 구조가 다르지 않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근데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이란 게 다 그렇지. 아파트가 꼭 지금과 달라야 해?’라고 생각한다. 중국만 봐도 똑같은 아파트는 못 짓게 법으로 금지시켜놨다. 도시 미관을 망친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중국도 그런다.

이지성 중국은 선진국이다.(웃음)
이현욱 외국에 가면 유람선 장사가 잘되지 않나. 파리, 런던, 심지어 상하이를 가도 그렇다. 근데 우리나라는 유람선 장사가 안 된다. 왜? 감상할 스카이라인이 없으니까. 관광자원이든 뭐든 다 다양성에서 나온다. 다양하니까 라오스를 가고 프랑스를 가는 거다. 프랑스가 한국이랑 똑같으면 뭣 하러 가겠나. 근데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다 똑같다. 사회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한데, 전부 다 공부 잘하고 수학 잘하니까 유니크(Unique)한 사람이 없다. 웃기지만 심각한 문제다.

‘격대교육’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지성 작가가 집을 지으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장소는 본채다. 양가 부모가 언제든 자고 갈 수 있는 공간과 도서관이 만들어질 본채는 ‘격대교육의 장’이 될 예정이라고. 그가 이토록 격대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 방문수.

이번엔 격대교육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격대교육은 정확히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나?

이지성 유대인의 기본 교육이다. 대표적으로 빌 게이츠가 외할머니로부터 격대교육을 받고 자랐다. 퇴계 이황도 마찬가지다. 조선 명문가는 다 격대교육을 받고 자랐다. 격대교육은 우리나라의 전통 교육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온화한 인물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격대교육의 효과는 무엇인가?

이지성 교사 시절에 교내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많은 아이들을 치료했다. 상담을 전공한 것도 아닌데 그게 가능했다. 어느 날 모범생인 아이가 상담을 와서 “죽고 싶은데 엄마는 이 사실을 모른다”고 하더라. 딱히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우리 나갈까?” 하고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떡볶이 먹을래?” 하고 떡볶이 나눠 먹으면서 말이다. 근데 아이가 얼굴이 밝아지면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하더라. 자기는 속 얘기를 다 했고, 선생님이 들어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니까 이젠 다 풀렸다고 말이다. 그 후로 상담 원칙이 생겼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들어준 다음,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떡볶이를 먹는다.(좌중 웃음) 정리하면, 들어주는 것 하나로도 아이들은 풀린다는 것이다. 격대교육을 하면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작은 스트레스라도) 해소가 된다고 본다. 곁에 건성이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힘들 때 같이 술이라도 마셔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망가지지 않는다. 근데 망가지는 아이들에게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작가님은 격대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나?

이지성 직접적인 격대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동네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많았다. 옆집에 감이 열리면 아무 때나 들어가서 따먹어도 뭐라고 안 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는 교육이 다 좋다고 볼 수 있을까?

이지성 물론 주의할 점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아무 준비 없이 아이를 케어하면 안 된다는 거다. 빌 게이츠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독서광에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아주 지혜로운 분들이었다. 유대인은 토라(구약)를 읽는 등 유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게 기본이기도 하니까. 퇴계 이황도 조선 사대부 집안의 격대교육을 받았는데, 말하자면 늘 고전을 읽고 자란 준비된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얼마 전 장인어른과 커피숍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참고로 제가 장인어른과 매우 친하다. 손녀가 태어났는데 이제 새로운 인생을 사셔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운을 떼니까 되게 당황하시더라.(웃음) 아이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놀이동산 데려가는 건 잠깐일 뿐 아이가 커가는 동안에도 소통하고 귀감이 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장인어른께서 그럼 내가 뭘 해야겠느냐 물으시더라. “오늘부터 3년 동안 책을 1천 권을 읽으시는 프로젝트를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제안을 드렸다. 그럼 손녀와의 관계도 좀 더 발전적이 될 수 있고, 장인어른 당신을 위해서도 발전적인 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인어른에게 만학의 열정을 심어줬다.(웃음)

이지성 막 불이 붙으셨다.(웃음) 만년필, 다이어리와 함께 요즘 자주 보시는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역사적 배경을 담은 책을 건네드렸다. 아무튼 제가 정의 내린 격대교육은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가 모두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맛있는 거 사주고, 좋은 옷 입히는 게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는 데 진정으로 도움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자는 거다. 결국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성장하는 셈이다. 앞으로 나가는 것만 진보일까? 조선 5백 년 동안 이런 격대교육이 이어져왔다면 거기엔 돌아봐야 할 가치가 있다.

[트렌드+] 내집 갖긴 어려워서 '내것 같은 집' 꾸며요


집, 이제 소유가 아니라 향유이다. '내 집 갖기 힘들다'는 시대에 집에 대한 관심은 더 늘어나고 있다. 요리 열풍이 거센 한 해가 지나가자 이제 그 바람이 집에 불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동네에는 옷가게와 음식점 대신 리빙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쿡방'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그 자리를 '집방'이 파고든다. 음식 사진을 찍어올리는 '먹스타그램'('먹다'와 SNS '인스타그램'의 합성어)에 이어 '집스타그램'이 SNS에서 유행하고 있다.

◇잘나가는 동네엔 다 리빙숍이 있다?

리빙의 유행은 인테리어 업체보다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업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월세 형태의 주거가 많다 보니 공사 없이 집을 바꾸려는 노력이 늘어나는 것이다.

의류 브랜드‘난닝구’는 지난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4층짜리 매장을 열면서 3~4층을 인테리어 소품, 침구와 같은 리빙 제품으로 채웠다. 인테리어를 주제로 한 웹툰‘은주의 방’(오른쪽 위)과 tvN에서 방영하는 인테리어 예능‘내 방의 품격’. /이덕훈 기자·CJ E&M

대형 의류 매장과 레스토랑의 각축장이 돼버린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지난해 '자주(JAJU)'와 '네프호텔'과 같은 대형 리빙 매장이 들어섰다. 가로수길 중심에서 약간 비켜난 '세로수길'과 이태원 '경리단길'에는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를 파는 작은 매장들이 생겨났다. 청년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역 인근에도 일본 종합 리빙브랜드 무인양품과 니코앤드가 매장을 냈다. 가구와 인테리어가 더 이상 주부들의 취미생활이 아니란 얘기다.

최근 생겨난 마트와 백화점에도 리빙 부문이 강화됐다. 이마트는 1000평 규모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 라이프'를 지난해 문 연 일산 킨텍스점에서 선보였다. 현대백화점 분당판교점도 실내 원예부터 수입가구까지 파는 리빙 매장을 만들었다. 에르메스의 경우, 지난해 대표 매장인 '메종 에르메스'의 한 층을 책상, 소파, 옷장, 장식 소품 등 리빙 제품으로만 채웠다. 2013년부터 상승세였던 리빙 산업의 규모는 지난해 눈에 띄게 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가구업계 점유율 상위 5곳의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합계는 2조4756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 9221억원)보다 28.8% 증가했다.

대중문화에 나타난 경향은 요리가 유행했을 때와 비슷하다. '집밥 백선생'과 '한식대첩'으로 쿡방 유행을 일으킨 CJ E&M은 지난달 23일부터 인테리어 예능인 '내 방의 품격'을 선보였다. 백종원, 최현석 같은 요리사들이 스타가 됐듯이 인테리어 전문가들도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는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독신 여성이 집을 꾸미는 과정을 만화로 풀어낸 웹툰 '은주의 방'은 네이버로부터 정식 연재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돈 버는 집'에서 '내가 살 집'으로

소득 수준과 주거에 대한 관심은 비례한다. 인테리어 산업이 강한 북유럽은 해가 빨리 저무는 환경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의 경우에는 청년층의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경제활동을 시작한 20~30대가 자력으로 집을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전·월세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남의 집'을 '내 것 같은 집'으로 느끼기 위해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집을 소유한 사람에게도 집의 의미와 가치는 달라졌다. 출판사 알에치코리아 라이프스타일팀의 황혜정 팀장은 "한국에서 제일 많은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투자 가치가 떨어졌다. 집의 의미가 투자에서 주거로 옮아가자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간 생활을 유지하는 데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식주'라고 한다. 유통업계와 방송계에서는 "요리가 유행하자 그다음 순서는 인테리어라는 예측이 자연스레 나왔다"고 한다. '자주'를 내놓은 신세계인터내셔널의 김영 팀장은 "요리는 대부분 집에서 이뤄진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요리를 하는 공간인 주방, 나아가서 가정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인 가구 증가가 요리뿐 아니라 리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구 수가 늘어나자 리빙 산업의 덩치가 커졌다.

대중의 관심이 음식에서 주거로 옮아간다는 것은 감각이 확장됐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리빙브랜드 프레떼의 김진이 과장은 "침구와 향초 같은 품목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고 했다. 패션이 시각을, 음식이 후각과 미각, 시각을 만족시켰다면 리빙은 여기에 촉각까지 더한다. '취향의 시대'를 맞은 지금, 리빙은 취향의 복합체나 다름없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한민희(34)씨는 "5년 전에는 잠깐 살고 말 전셋집을 공들여 꾸미지 않았다. 지금은 2년을 살 집에서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인테리어는 또 하나의 패션이 되고 있다"고 했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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