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북한은 하는데 우리는 왜 核결단을 못하는가

조선일보
  • 김대중 고문
입력 2016.02.02 03:20

北지원·평화 주장하면 '지성인', 핵무장 거론하면 '싸움꾼' 몰아
몽매한 평화론에 北 핵무장… 中 오리발, 美 립서비스만
안보력 보강 특단 조치 필요, 비핵화 선언 폐기도 각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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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고문

우리나라에서는 국방·안보(安保)를 거론하면 호전(好戰)주의자가 되고 대화를 강조하면 평화주의자가 된다. 안보를 얘기하면 강경파가 되고 평화·대화를 거론해야 온건파가 된다. 북한의 국지적 도발에 대한 '상응한 대응'을 주장하면 곧 '전쟁하자는 것이냐?'는 극단 논리가 등장하고 북한 도발을 거론하면 국민을 공포로 몰아넣는 선거 전략이라고 반발한다.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면 중국과 미국을 자극하지 말자며 말을 막는다. 한마디로 북한 지원과 대화, 평화를 얘기해야 지성인이 되고 군사적 균형, 핵무장 등을 거론하면 '싸움꾼'으로 몰리는 그런 세월을 우리는 살았다.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을 안고 있는 나라, 핵무기의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의 왜곡된 현상이다.

그러는 동안 북한은 남쪽의 '지원'을 받아 남쪽의 몽매한 평화론에 힘입어, 그리고 북한 독재 권력을 만나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 쪽 일부 지도층의 '북한병(病)'을 틈 타 핵무기를 개발하고 네 번째 핵실험을 했다. 이제는 그것을 실어 나를 수단 (미사일)까지 갖추는 핵 강국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지금 북한의 핵무기는 언제 어디서 버튼을 누를지 종잡을 수 없는 혈기만 왕성한 젊은 독재자의 손에 들려 있다. 우리는 언제 무엇 때문에 핵폭탄을 얻어맞게 될는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북한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 대통령이 세론(世論)을 무릅쓰고 찾아다니며 공을 들였는데도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사태 이후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우리 쪽 좌파 세력을 닮았는지 대화와 평화를 되뇌고 있다. 미국도 립 서비스만 하고 있다. 대통령의 신년 의회 연설에는 '북핵'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미국의 핵우산을 거론하는 고위층 발언 뒤에는 사드를 한국에 수출(?)하려는 상술의 냄새마저 난다. 기회를 놓칠세라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핵무기의 모든 요소(농축우라늄에서 핵실험 시뮬레이션, 운반 수단까지)를 분해(分解)해놓고 있다가 일단 유사시 '결합'하기만 하면 되는 단계에 와 있는 일본은 옆집의 불운(不運) 뒤에서 히죽 웃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전전긍긍해야 마땅한데도 정치권은 물론 지식층, 지도층 모두가 한가롭게 친(親)자 돌림의 세(勢) 다툼에 도낏자루 썩는지 모른 채 돌아가고 있다. 총선거가 내일모레인데 우리 안보 상황에 관한 논의나 토론은 완전히 실종됐다. 국회는 사실상 마비 상태이고 대통령은 국회를 우회해서 국민과 직접 '여론 정치'를 하고 있다. 여당은 친박·비박의 낯뜨거운 주먹다짐에 여념이 없고, 야당은 은퇴했던 노병(老兵)들을 불러내 회춘(回春) 놀이를 하고 있다. 정치인들 끼리끼리 짝짓기, 사람 마구 끌어당기기, 지역 아부하기, 과거 들춰내기, 말꼬리 잡기, 법안 흥정하기, 공천 치고받기로 난장판이 연출되고 있을 뿐 핵(核)의 핵자(字)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은 주변 강국들로 하여금 우리를 한심하게 또는 얕보게 하고 있다. '저런 나라를 과연 도와줄 가치가 있을까?' '저들이 저렇게 한가한데 우리가 나서 대리전쟁을 해줄 이유가 무엇인가?' 두려운 것은 한국이 자신의 안보를 남에게 의존하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남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 개념 없는 나라로 치부되는 것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 기지 하나 건설하는 데 무려 10여년이 걸리고 온갖 부끄러운 난투극을 벌인 상황을 보면서 주변국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언필칭 세계 10 몇대 경제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치고 자국의 안보를 타국의 지원과 배려, 국제기구의 원격조종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나라는 아마도 대한민국뿐일 것이다. 경제가 최하위권이라는 북한도 국방은 자력으로 하고 핵무기도 세계의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 결단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이유가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 나라의 안보는 외교 잘해서, 이리저리 줄 서기 잘해서, 누구누구와 흥정 잘해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외교적 재주와 기회 포착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본질은 우리가 내부에서 힘을 기르고 그 힘을 적절히 안배해서 사용하는 데서 얻어질 수 있다.

온 국민과 정치권과 사회 지도층이 안보의 공통분모를 도출해내는 작업을 당장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우선 칼자루를 쥔 정권만이라도 우리의 안보력을 보강하는 또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과단성을 보여야 한다. 일을 저지르고 보자는 것이다. 핵무장에 관한 논의부터 시작하자. 불가피하다면 비핵화 선언 폐기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도 각오하자. 그리고 그에 따른 그 어떤 불이익도 감수할 의지가 있음을 대내외에 천명하자. 사드의 도입을 공식화하자. 북한의 어떤 국지적 도발에도 몇 배의 보복 반격을 가한다는 자세를 공언해야 한다. 스스로를 도우면 국제사회도 우리를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 진부한 말이지만 전쟁을 각오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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