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 대권 경쟁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버몬트·무소속) 연방 상원 의원을 27일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첫 경선이 열리는 아이오와주(州) 코커스(당원대회)를 닷새 앞둔 시점이었다. 힐러리 클린턴과 샌더스가 박빙의 싸움을 벌이고 있어 이날 만남에 관심이 집중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 인터뷰에서는 "샌더스는 이상적이고, 힐러리는 정책의 안팎을 다 알고 매우 영리하다"고 말해 힐러리를 '후계자'로 삼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샌더스는 45분간 오바마 대통령을 면담한 뒤 상당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만남이 긍정적이었고 건설적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경선 레이스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 노력해왔다. 앞으로도 공명정대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오바마가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힐러리를 칭찬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 걸 알지만, 대통령이 힐러리에게 기울었다는 관측을 전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바마도 이날 회동 후 지역방송 인터뷰에서 "좋은 만남이었다"며 "내가 샌더스, 힐러리를 다 만나는 것은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것보다는) 민주당이 이뤄놓은 업적에 더 집중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는 힐러리에게 자신이 기울지 않았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샌더스와 따로 만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도 "힐러리와 (지난해 12월) 만났을 때처럼 장시간 식사하고 대화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면담만 했을 뿐"이라며 여전히 '힐러리 경사론'을 제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터뷰 때마다 자신의 업적을 뒤집지 않을 대통령이 나오길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란 핵 합의나 총기 규제 강화,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개혁) 등은 샌더스보다 힐러리가 더 '친(親)오바마' 쪽이다. 샌더스는 오바마 케어를 전면 개선하겠다고 주장했고 총기 규제에도 소극적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샌더스를 백악관으로 불러 '중립'을 강조한 것은 민주당 본선 승리를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두 후보 간 치열한 경쟁과 이에 대한 관심이 공화당 후보와의 최종 대결에서 승리하도록 만드는 토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샌더스가 출마하면서 민주당 지지층의 참여가 확 늘었다"고 평가했다.
힐러리가 오바마의 각종 정책에 동조하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구애하는 것처럼, 샌더스도 이번 백악관행을 계기로 '오바마 마케팅'을 벌였다. 그는 자신의 첫 상원의원 선거(2006년) 때 오바마가 지원 유세한 인연부터 소개했다.
힐러리나 샌더스가 오바마를 언급하는 것은 임기 마지막 해 대통령으로서는 드물게 인기가 있어서다. 전체 여론조사에서 50%,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70% 이상 지지율이 나온다. 오바마는 "후보 지명 전까지 누구도 후원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두 후보 모두 대통령 뜻이 자기에게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정해지면 그때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이 경선 단계에서부터 후계자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다만 현직 대통령 인기가 높으면 후광 효과를 얻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재선까지 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같은 공화당 소속인 조지 H.W. 부시에게 정권을 넘겼다. 당시 레이건의 임기 말 국민 지지율은 60%를 훨씬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