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연일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권력자'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적지 않은 모습이다.

김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2030 새누리당 공천설명회'에 참석해 "과거에는 공천권이 당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밀실에서 좌지우지돼 왔다"며 "많은 인재가 정치를 하고 싶어도 구태 정치의 두려움 때문에, 권력자에게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것 때문에 용기를 못 냈다"고 했다. 전날 2012년 국회선진화법 통과 당시 상황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을 '권력자'로 지칭했던 김 대표가 연이틀 같은 표현을 사용해 각을 세운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 "우리 당내 많은 의원이 선진화법을 반대했지만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의원들도 찬성으로 돌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공식적으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선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아픈 곳을 찌른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 공약으로 채택했고, 이를 지키자고 한 것인데 이제 와서 후임 지도부가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돌리면 되느냐"고 했다.

자신을 그린 그림 보며 웃는 김무성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청년 앞으로! 2030 새누리당 공천설명회’에서 자신을 그린 그림을 보며 웃고 있다.

[親朴 연일 공격에... 김무성 "신중히 생각하라" 경고 ]

선진화법 통과 당시 어떤 일이

일명 '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 논의는 국회에 해머, 전기톱 등이 등장하는 '폭력 국회'를 막기 위해 시작됐다. 여야는 2011년 5월부터 '6인 소위원회'를 구성해 협상을 벌였는데, 그해 11월 김선동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소집된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을 계기로 '정치 개혁' 여론이 높아졌고, 여야는 총선을 2개월 앞둔 2012년 2월 선진화법을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 새누리당도 선진화법 추진을 19대 총선 공약에 포함시켰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였다.

문제는 총선 이후였다. 새누리당은 4·11 총선에서 152석을 확보해 과반이 됐다. 그러자 의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과반을 차지해 각종 법안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데 굳이 법을 바꿔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던 와중에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은 4월 25일 충북도당에서 열린 총선공약실천본부 출범식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총선 전에 여야가 합의했고, 국민께도 약속했다"며 "18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다시 한 번 본회의를 소집해 국회선진화법안을 꼭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야당은 새누리당이 선진화법 처리에 합의해 놓고 선거 후 입장을 번복했다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당시 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희망이 생긴 것 같다"고 했었다. 여야는 결국 5월 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재석 192명 중 찬성 127명, 반대 48명, 기권 17명으로 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선진화법은 최근 정부·여당이 요구한 노동·경제 법안을 야당이 반대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다. 여당이 과반수지만 이 법 때문에 '민생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는 여론이 불거졌고, 김 대표가 '박 대통령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커진 것이다. 김 대표는 당시 반대표를 던졌다.

상향식 공천 건들지 말라는 메시지?

여권에서는 김 대표가 과연 박 대통령·친박과의 갈등을 계속 끌고 나갈 생각인지가 관심사다. 김 대표는 2014년에도 개헌론을 꺼냈다가 청와대가 이의를 제기하자 "불찰이었다"고 물러서는 등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듯하다 철수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 주변에서는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김 대표는 '정치 생명'을 걸고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친박들이 제동을 거는 게 최근 상황이다. 이를 돌파하지 못할 경우 당내 리더십에 흠집이 나는 것은 물론 내년 대선에서도 정치적 입지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 비박계 한 의원은 "김 대표가 이처럼 강하게 나오는 것은 결국 '상향식 공천 문제는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친박에게 전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친박들은 "김 대표의 주장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윤상현 의원은 "김 대표 말처럼 당시 친박 의원들이 다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 아니다"라며 "나도 반대했고 최경환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고 했다. 윤 의원은 "당시 당론으로 강제도 안 했고 자유투표했다"고 했다. '신박(新朴)'으로 불리는 원유철 원내대표는 "선진화법 통과 시점이 총선 뒤여서 공천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