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로 예정된 북한인권법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누구보다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 인지연(43) 북한인권법통과를위한모임(NANK) 대표다. 그는 2013년 9월 29일부터 100일간, 2015년 9월 1일부터 100일간 등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어 남기는 '사진서명운동'을 벌였다. 일종의 인증샷 캠페인이다.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는 당시 찍은 사진 100여 점이 전시 중이다. 지난 25일 끝날 예정이던 전시 기간은 2월 1일까지 연장됐다. 통인화랑에서 만난 인 대표는 "북한인권법 본회의 통과라는 뜻깊은 소식에 전시를 이어가기로 했다"며 "지난 2005년 발의돼 11년을 끌어온 북한인권법 통과는 북한 주민의 짓밟힌 인권을 바로 세우고 자유 통일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명운동을 할 때는 매일 아침 문구를 고민했어요. 그리고 색도화지에 문구를 인쇄하고 오려 보드판에 붙였죠. 이렇게 만든 피켓이 90여 개나 돼요." 인씨는 하루 두 시간씩 광화문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외쳤다. 직장인과 청소년·대학생은 물론 외국인도 동참했다. 인씨는 "휠체어를 타고 광화문을 지나다 피켓을 들었던 박성준(29)씨는 우리 모임의 부대표가 됐다"며 "2013년에 340명, 2015년에 401명 등 총 741명이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해 기꺼이 얼굴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인지연 대표는 지난 25일 ‘북한인권법 제정을 위한 100일 캠페인 사진전’이 열리는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비가 오면 우비를 두 개씩 입고, 눈이 오면 코트를 여미고 광화문으로 나갔다”며 “자기 얼굴 걸고 사진을 찍어준 시민 741명이 있었기에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북한 수용소의 참혹한 현실을 담은 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보고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초등학교 때 반공(反共) 표어·포스터를 만들었거든요. 북한의 현실은 그때와 다를 바 없더라고요. 제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세월이 흘렀는데 말이죠. 믿을 수가 없었죠."

프리랜서 번역 일을 하던 인 대표는 탈북자를 돕는 시민단체 두리하나에서 서신(書信)을 번역하는 봉사를 시작했다. "브라질·네덜란드같이 먼 나라에서도 '북한 주민을 돕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어요. 놀랍기도 했고 반성도 많이 했죠."

그는 북한 인권을 대변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에 입학했다. 법학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할 일이 더 많아졌다. 대안학교에서 탈북 청소년에게 신문활용교육(NIE)을 통해 한국 문화를 가르쳤고, 미국 인권단체인 주빌리 캠페인과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서 인턴도 했다. 2014년 10월엔 미국 워싱턴DC 변호사 시험을 통과했다.

인 대표는 "이번 여야(與野)의 북한인권법 합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통일부 산하로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크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여망이 담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여당과 북한의 비위를 건드리고 싶지 않은 야당이 절충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인권 침해 참상을 기록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만드는 건 통일 후 극악무도한 김씨 독재정권과 공범자들을 처벌할 근거를 만든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연구를 위한 게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법무부 산하에 설치해야 하는 거죠." 그는 "일단 11년간 진통을 거듭해온 북한인권법의 탄생을 기뻐하면서 차후 이 부분이 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통일의 그날까지 북한 주민들이 잘 버텨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게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