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 런던 대표 슬럼가였던 '해크니'… 10년간 가장 낮은 범죄율 유지한 비결은?

입력 2016.01.26 03:00

영국 '해크니개발협동조합' 도미니크 엘리슨 대표

도미닉 엘리슨 대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런던의 대표적 슬럼가로 손꼽혔던 해크니(Hackney) 지역. 마약과 강도 등 범죄의 온상이었던 이곳은 지난 10년간 역사상 가장 낮은 범죄율(1만1800여 건)을 유지하고 있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과학, 기술, 전문 지식 및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산업이 급성장해 현재 해크니 지역 산업의 48%를 차지하고 있으며, 의료 산업과 소매 기업도 41%나 성장했다. 그 비결은 바로 사회 혁신가와 지역 소상공인에게 빈 사무실과 매장을 빌려주고, 버려졌던 주자창을 지역 최고 랜드마크로 탈바꿈시키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해크니개발협동조합(Hackney Co-operative Developments·이하 HCD)'의 도미닉 엘리슨(Dominic Ellison·사진) 대표가 그 노하우를 알리기 위해 내한했다. 안산시와 경기테크노파크가 공동 주최한 '사회적 경제를 통한 도시 재생'에 강연자로 나선 엘리슨 대표를 지난 13일 만났다.

―원래 주거협동조합이었다가 지역 주민들에게 공간을 빌려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 계기는 무엇인가.

"구청에서 우리에게 버려진 건물을 활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전쟁 때 폭격을 맞은 후 방치된 3층 건물이었는데 예산이 없어 보수도 철거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우리는 구청에 100년짜리 '후추알 임대(중세 시대 영주가 농민들에게 후추 한 알을 받고 논밭을 빌려주었던 것에서 비롯된 용어)'를 해달라고 했다. 임대를 받은 후에는 커뮤니티를 활성화한다는 내용의 사업 기획서를 작성해 '트리오도스은행(Triodos bank)' 을 찾아갔다. 융자금을 얻어 1층에는 상가, 2~3층에는 사무 공간을 꾸미고 지역 소상공인, 사회혁신가, 예술가들에게 공간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이 건물을 시작으로 전체 80여 사업자가 입주해있는 '달스턴 워크스페이스(Dalston Workspace)'을 만들었다."

―공간을 임대할 때 원칙이 있나.

"임대료는 시세의 70% 수준으로 유지한다. 대신 우리를 설득할 수 있는 명확한 비즈니스 아이템과 사업 계획서가 있어야한다. 첫 입주 계약은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한다. 사업자가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성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은 이후 6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건물 안 부대시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입주 기업 간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협업) 기회도 제공한다. 만약 경영상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가 운영하는 컨설팅·교육·대출 등이 포함된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공간당 입주 경쟁률이 12대1에 이른다."

HCD가 기획한 질레트 광장은 해크니 지역 주민들의 놀이터이자, 사회적기업과 NPO들의 소통 창구다.
HCD가 기획한 질레트 광장은 해크니 지역 주민들의 놀이터이자, 사회적기업과 NPO들의 소통 창구다. / HCD 제공
―임대 사업만으로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었나.

"우리의 두 번째 건물인 '달스턴 컬처 하우스(Dalston Culture House)'는 우범 지대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우리는 이곳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하기 위해 예술가들을 입주시켰다. 세계적 재즈 클럽 '볼텍스(Vortex)'도 입주했다. 높아진 임대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볼텍스를 우리가 영입해온 것이다. 지난 런던올림픽 폐막 행사장으로도 활용됐던 질레트 광장(Gillett Square) 역시 원래 버려진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달스턴 컬처 하우스에 입주한 예술가들, 브래드버리 건물에 입주한 사회적 혁신가들이 이곳에서 매우 질 높은 예술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훌륭한 '공공장소'로 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HCD는 해크니 지역 주민이면 출자금 없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수익은 모두 지역사회에 환원한다. 이런 운영 구조에다 구청의 '후추알 임대'라는 공공 파트너십이 더해지고, 은행의 장기 융자가 있었기에 다양한 문제 해결이 가능했다."

―지역이 발전하면서 주변 부동산 시세에도 영향을 미쳤을 텐데,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시가 번성하고 사람이 몰리면서 기존 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같은 부작용은 없었나.

"해크니가 인기 있는 동네로 변하면서 민간 부동산 업자들이 임대료를 올리고 있다. 특히 일부 지역은 전통적 부자 동네인 서부 런던 지역만큼 임대료가 오르기도 했다. 런던시가 일정 크기 이상 건물은 공간의 10%는 저렴하게 임대해야 한다는 정책을 새로 만들었지만 부족하다. 신규 투자자들은 그저 3~4년 건물을 갖고 있다가 비싸지면 되팔거나 잠시 머물다 가는 별장용 주택만 짓고 있다. 건강한 생태계를 지키려면 우리 같은 공동체 이익 회사(Community Interest Company)가 더욱 필요하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새로운 파트너십 모델을 시도 중이다. '다운햄(Downham)'이라는 지역은 원래 비인기 지역이었지만, 최근 값이 올라 프리미엄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이 지역에 30만파운드(약 5억원)짜리 낡은 건물을 하나 갖고 있다. 원래 우리에게서 건물을 매입하려던 부동산 업자가 리모델링을 맡고, 우리가 공간을 운영하며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해소하기 위한 본보기 사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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