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한 북한인권법은 여야가 자신들의 정체성 문제 때문에 11년째 대립해온 법안이다. 여당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이 법의 처리를 요구했지만, 야당은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해 남북 관계에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해왔다. 그러나 4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야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해 타협안을 마련했다.
북한인권법의 핵심 내용은 북한인권재단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해 정부 차원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 중 북한인권재단은 북한 인권 실태 조사, 북한 인권 개선과 관련된 연구와 정책 개발,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등을 수행하는 기구로 통일부 아래 두기로 했다. 재단이 세워지면 탈북자의 사회 정착 프로그램 확대, 강제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 구출 운동 단체에 대한 지원, 북한 인권 관련 행사 등이 활발해져 궁극적으로 북한 인권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게 새누리당의 의견이었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재단을 통해 대북 전단 살포 등 반북(反北) 활동을 주도하는 단체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라며 재단 설립 자체에 반대해 왔다. 야권에서 북한인권법을 '삐라지원법'이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 과정에선 재단 설립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북한 핵실험으로 국내외 여론이 악화하면서 야당이 반대 명분을 잃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의당이 더민주와 달리 북한인권법 처리에 찬성하는 뜻을 밝히는 등 '제3당 효과'도 여야 합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단이 '반북 단체 지원용'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야당의 우려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해 향후 재단의 활동을 둘러싸고 여야 간 갈등 소지를 남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북한 내 인권침해와 사례 증거를 체계적으로 기록·보존하는 역할을 맡는 기구로 일단 통일부에 두기로 했다. 그동안 여야는 보존소를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 의견 대립을 보여왔다. 여당은 보존소가 법무부에 설치돼야 통일 후 인권침해 가해자들을 처벌할 증거를 확보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에 형사 소추할 기반을 마련하기에 용이하다는 입장이었다. 과거 서독이 설치했던 인권기록보존소가 동독 내 인권 탄압에 대한 제어 장치 역할을 했던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보존소가 법무부에 설치되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보존소를 주무 부처인 통일부 내에 두고 그 기능도 단순 정보·기록의 보존에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자는 '처벌'에, 후자는 '조사·연구'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번에 여야가 합의한 절충안은 일단 보존소를 통일부에 두되 차후에 관련 기록을 법무부로 이관한다는 내용이다. 야당이 낸 타협안을 여당이 수용한 것이다.
또 북한인권법이 제정되면 정부는 북한 인권 기본계획과 집행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보고해야 하며, 북한인권자문위원회가 통일부에 설치된다. 여야는 북한인권자문위원을 여야 동수(同數)로 추천하기로 합의했다. 외교부에는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북한인권대사를 두게 된다. 또 정부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때 반드시 국제적 인도 기준에 따라 전달·분배·감시를 하도록 했다. 대북 '퍼주기' 논란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