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파시스트를 뽑을까, 사회주의자를 뽑을까

    입력 : 2016.01.23 03:00

    美 올 대선 유력주자 예상 빗나가
    힐러리 클린턴 對 젭 부시 대신 트럼프와 샌더스 浮上
    票心은 아웃사이더 후보들에 박수
    변화에 놀란 주류 정치권 "대중의 마음 읽지 못했다" 반성
    국민의 좌절·분노 읽지 못하면 우리 총선 결과도 알 수 없어

    강인선 논설위원
    강인선 논설위원
    올해 미국 대선은 클린턴 가문과 부시 가문의 싸움이 될 줄 알았다. 남편의 후광으로 성장한 힐러리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가 되고,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은 젭 부시가 공화당 후보가 되어 세기적인 대결을 벌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전통적인 정치 엘리트 대신 '선동가'이자 '포퓰리스트' 두 명이 나타나 판을 흔들고 있다. 공화당에선 부동산 재벌이자 '막말의 황제'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에선 평생 무소속으로 정치해온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극우와 극좌에 가까운 아웃사이더들이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정치적 입장은 극과 극이지만 70대에 할 말 다하고 산다는 건 공통점이다. 지난해만 해도 이들의 선전이 이변이자 돌풍이라며 다들 웃고 즐겼다. 선거 때면 튀는 후보가 나와 한판 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지는 건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샌더스 현상은 의외로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이 시대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이 이념적·정치적으로 어디를 향해 가는지 보여주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미국 사회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양극화돼 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 집권 7년 동안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이 느낀 박탈감과 위기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진보적 가치와 소수 세력, 이민자들에게 미국을 빼앗긴 듯한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국경을 막아서라도 이민자를 제한하고 무슬림 입국을 막겠다는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주장이 일부에서 먹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샌더스는 2010년 부자 감세 연장을 막기 위해 8시간 37분 동안 의회 연설을 강행해 유명해졌다. 1%의 부자에게 모든 부가 집중되고 99%의 국민은 고통받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친다. 몇 년 전 탐욕스러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미국 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샌더스는 힐러리의 정책을 조금 더 진보 쪽으로 이동시키자는 소박한 목표로 대선에 도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강렬한 지지 덕에 몇 달 만에 힐러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당의 주류도 아니고 정치 엘리트도 아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과 더 쉽게 소통한다. 이들은 속으로 생각은 해도 사회주의자나 인종차별주의자란 비난을 받을까 봐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도 거침없이 쏟아낸다. 대중은 비난하면서도 은근 속 시원해한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정책도 무책임하게 마구 쏟아낸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근거도 없는 무임승차론을 제기했다. "미국이 한국을 보호해주는데 한국은 분담금을 쥐꼬리만큼 낸다"는 것이다. 샌더스도 한 인터뷰에서 "부자 나라에 미군이 주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아니라 속풀이 수준의 유세를 하는 동안 대선판은 막말과 무책임으로 얼룩졌다. 그래도 트럼프와 샌더스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 행진 중이다. 그 지지율이 경선에서 표로 전환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미국 유권자들은 마치 '파시스트 트럼프냐' '사회주의자 샌더스냐'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비 선거 시작이 코앞인데도 이단아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자 양당 지도부는 당황하고 있다. 트럼프·샌더스 열풍은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좌절과 불안을 기존 정치권이 짚어내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분노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젠 트럼프와 샌더스에게로 흘러간 유권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지가 큰 과제로 남았다.

    우리도 총선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합집산에 열중하고, 여당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별다른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의 좌절과 분노를 제대로 읽지 못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선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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