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으로 치장한 홀에는 769대의 슬롯머신과 65대의 룰렛머신이 밤새 돌아가고, 테이블과 의자를 메운 이들에게선 환호와 탄성이 교차한다. 카지노 위로 우뚝 솟은 호텔 건물에는 120개의 호화 객실이 들어차 있고, 외벽에는 호랑이 얼굴을 형상화한 로고가 번쩍인다. 건물의 모든 안내판은 러시아어와 영어·한자가 병기돼있다.
지난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에 문을 연 카지노 복합리조트인 '티그르 드 크리스탈(Tigre de Cristal·'수정 호랑이'라는 뜻)' 풍경이다. 연해주 최초의 카지노이자, 마카오 도박 산업을 일군 홍콩의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의 아들 로렌스 호가 주요 투자자로 참여한 것 때문에 완공 전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이곳이 개관 초기 중국 관광객들로 붐비면서 '연해주를 라스베이거스·마카오처럼 만들어 새 경제 동력으로 삼겠다'는 러시아의 계획이 먹혀들지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다.
'티그르 드 크리스탈'을 시작으로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에는 여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600㏊ 부지에 셀레나 월드 리조트 앤드 카지노·피닉스 리조트 카지노 프리모예(이상 2017년 1월 개관 예정)·프리모스키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시티(2018년 1월 개관 예정) 등 총 8개의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들어선다.
로렌스 호뿐 아니라 홍콩·마카오의 다른 거부(巨富)도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의 카지노 복합리조트에 대거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구(舊)소련 시절까지만 해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됐던 군사항 블라디보스토크는 '카지노 허브'로 탈바꿈하게 된다. 일부 언론은 벌써 블라디보스토크를 '북쪽의 마카오'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도', 진짜 우주특집 예고 “상반기에 러시아 간다” ]
러시아는 2009년 특별법을 만들어 연해주를 비롯, 2014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소치가 있는 크라스노다르, 알타이, 칼리닌그라드 등 4개 지역에 한해 카지노 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중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연해주 개발에 가장 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로 돈줄이 끊어지고 유가 폭락까지 겹친 상황에서 극동 지역에서 돌파구를 만들어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서다. 영국 가디언은 "서유럽과의 경제 교류가 끊기면서 러시아가 연해주 지역에서 새로운 투자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했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는 동시에 극동 개발을 앞당길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긴 푸틴 대통령이 카지노 프로젝트를 전폭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마카오(39%)·싱가포르(12~22%)보다 훨씬 낮은 2%의 도박세를 걷기로 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무비자 입국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러시아가 연해주 일대를 카지노 중심으로 점찍은 것은 무엇보다 동북아 국가들의 '돈주머니'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가디언은 "연해주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는 중국·일본·한국에서 모두 비행기로 2시간대에 도착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돈 있는 손님들을 끌어들이기에 유리하다"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2시간 30분 이내 비행거리에 거주하는 4억명이 러시아행 비행기를 탈 경우 마카오와 필리핀의 카지노 리조트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망도 나온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블라디보스토크 무역관은 "카지노와 관광산업이 단기간 외화 유입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며 "열악한 도로를 개선하고 주변 레저 시설을 얼마나 빨리 갖추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카지노에 관심이 쏠리면서 우리 공관은 교민 사회에 카지노 지역에 갈 경우 신변안전을 유의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