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국제부 차장

지난 16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야당 민진당의 여성 후보 차이잉원이 집권당인 국민당 후보를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 하지만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한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의 한 연예 기획사 걸 그룹으로 활동 중인 대만 소녀가 어찌하다 대만 국기를 들었던 것이 뒤늦게 알려져 중국의 반발을 샀고, 결국 이 소녀가 카메라 앞에 나서 중국인에게 사죄하기에 이르렀다.

이 장면을 보고 오랫동안 잊었던 대만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1989년)가 떠올랐다. '슬픔의 도시'라는 뜻인 이 영화는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건너오기 이전부터 대만에 살던 본성인(本省人) 임아록씨 가족의 굴곡진 역사를 다룬다. 역사적 배경은 이렇다. 1945년 대만은 51년간의 일본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지만, 이내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소수 외성인(外省人) 즉 국민당 정부 지배 아래 놓인다. 본성인과 국민당 정부의 갈등은 1947년 2·28사건으로 폭발한다. 대만 남부 도시 가오슝을 중심으로 본성인들이 독립운동을 벌이자 국민당 정부가 무차별 진압해 3만여명의 사망자를 낸 처참한 사건이다. 본성인들은 무능한 국민당 정권이 자신들을 무력으로 통치하려 한다며 독립을 위해 차라리 '연미친일(連美親日)'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949년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과의 본토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쫓겨 들어오면서 국민당의 대만 통치는 공고화되고 만다.

영화는 해방에서 국민당 패전까지 4년간 임씨 가족이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다룬다. 임씨에겐 네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은 친일파로 몰린 동생을 지키다 폭력배 총을 맞고 죽는다. 둘째는 일제에 의해 군의관으로 징집됐다가 전사한다. 셋째는 친일파로 몰려 국민당 정권의 경찰에 끌려갔다가 미쳐버린다. 그나마 온전한 이는 여덟 살 때 머리를 다쳐 청력을 상실한 넷째 문청(량차오웨이·梁朝偉)뿐이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문청은 당시 대만 본성인들의 상황을 상징했다. 그런 문청조차 친구의 대만 독립운동 조직이 경찰에 일망타진되면서 여기에 휘말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영화 속의 슬픔과 분노가 어느 정도 풀린 줄 알았다. 그런데 2016년 새해에 열여섯 살 어린 소녀가 마치 죄인처럼 등장해 "나는 자랑스러운 중국인"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 강자의 논리에 맞춰 갈 수밖에 없는 국제정치의 엄혹함에 대해선 새삼 논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녀의 사죄 영상을 보면서 이번 사건이 중국 비즈니스 등에 미칠 악영향만 걱정한다면 이는 대만인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를 떠나 무척 슬픈 일이다.

민진당의 압승을 놓고 양안 관계를 둘러싼 변화, 동북아 정세 판단을 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어린 소녀가 느꼈을 당혹감, 이를 본 대만인들의 찢어지는 마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 깊이 헤아려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