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김일성 핵 개발 말렸다

입력 2016.01.13 03:00

1964년 中 핵실험 성공 직후 김일성 찾아와 "얼마 들었느냐"
마오쩌둥 "20억달러"라며 "우린 큰나라… 北은 필요 있나"

1954년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오른쪽)과 나란히 선 김일성 사진
1954년 베이징에서 마오쩌둥(오른쪽)과 나란히 선 김일성.

"중국은 인구도 많고 나라도 크다. 체면이 필요하다. 그래서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그럴 필요가 있나."

1964년 10월 중국이 첫 핵실험에 성공한 뒤,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주석이 자기를 찾아온 김일성 북한 주석에게 한 말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말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마이니치신문은 12일 이런 내용이 담긴 조선노동당 내부 강연회 기록을 입수해 공개하고, 핵 개발을 둘러싼 중국과 북한의 갈등이 이미 반세기 전에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김일성은 중국 핵실험 직후 베이징에 가서 마오 주석을 만나 핵실험 성공을 축하했다. 마오 주석은 김일성이 보는 앞에서 인민해방군 핵실험 책임자를 불러 "이번 실험에 들어간 돈이 얼마냐"고 물었다. 군 책임자가 마오 주석에게 낮은 소리로 귀엣말하자, 마오는 "김일성 동지 앞에선 괜찮다"면서 "20억달러"라고 솔직히 말해줬다. 당시 20억달러는 같은 해 열린 도쿄올림픽 전체 예산(28억달러)의 3분의 2가 넘는 큰돈이었다.

조선노동당은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2월 내부 강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당 간부가 청중에게 마오 주석과 김일성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고 "마오 주석이 살아 있었다면 북한의 핵 개발을 환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중국도 핵미사일을 개발해 군사력을 강화한 뒤 경제 발전에 힘썼다"면서 "우리가 핵과 위성 로켓을 가지는 게 경제 건설과 인민 생활 향상에 유리한 정세를 만들어낸다"고 했다.

미국은 1945년, 소련은 1949년 핵실험에 성공했다. 중국은 영국(1952년)과 프랑스(1960년)에 이어 다섯 번째로 핵실험에 성공했다. 김일성은 1950년대부터 여러 차례 소련에 사절단을 보내 원자력 기술을 배우게 하고, 1964년 2월 영변에 원자력발전소를 세웠다.



 


 

[나라 정보]
다섯 번째로 핵실험 성공한 중국, 북한과의 갈등 반세기 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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