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은 누구?]

11일 오전 11시 서울고검 청사 기자실로 이영렬〈사진〉 서울중앙지검장이 찾아왔다. 지난해 12월 24일 취임한 이후 첫 기자실 방문이었다. 이 지검장은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격앙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국석유공사가 하베스트 정유공장을 인수하면서 5500억원이나 되는 나랏돈 손실을 초래했다." "검찰은 국민의 이름으로 기소했는데 법원이 무리한 기소이고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 지검장은 이날 기자실에서 4분가량 원고를 읽으면서, 지난 8일 서울중앙지법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법원이 (투자) 손실이 발생한 사실을 인정해놓고서도 '경영 판단'이었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석유공사의 부실 투자로 인해) 공중으로 날아간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했다. 그는 또 "강 전 사장은 당시 아무런 실사(實査)도 하지 않고 3일 만에 '묻지마식 계약'을 하고 이사회에도 허위로 보고해 회사에 1조원 넘는 손해를 입혔는데, 그 이상 무엇이 더 있어야 배임이 되느냐"며 "이번 판결처럼 경영 판단을 지나치게 폭넓게 해석하기 시작하면 기업 비리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고도 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장이 법원 판결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강 전 사장 무죄판결문을 받아 본 이 지검장은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주말 이 지검장이 직접 기자회견문을 썼다고 한다. 통상 서울중앙지검이 법원 판결에 불만이 있으면 대외 공보(公報) 업무를 담당하는 차장 검사가 의견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지난해 연말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공석인 까닭에 이 지검장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이 지검장의 기자회견은 배임죄로 기소된 기업인 등에 대해 법원이 최근 잇달아 무죄를 선고하자 나온 것이라고 검찰 관계자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지검장이 대검 수뇌부와 미리 상의했다고도 했다. 지난해 9월 131억원의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통영함 장비 납품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이득을 주고 국가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던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역시 지난해 10월 1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 주변에선 그와는 다른 해석도 나왔다. 해외 자원 개발 비리 수사는 지난해 3월 당시 이완구 총리의 '부패와의 전쟁' 담화를 계기로 시작됐다. 청와대의 의중(意中)이 담긴 수사로 받아들여졌다. 이 지검장이 이를 의식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을 비판하는 강수(强手)를 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에 대해 "6개월 걸친 재판에서 나온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판결문을 통해 무죄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며 "서울중앙지검장이 언론을 통해 밝힌 내용은 항소심에서 입증하거나 주장해야 할 사항으로 우리 법원으로서는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나 가치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