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로펌과 외국 로펌이 합작 법인을 만들 때 외국 로펌 지분을 49%로 제한하는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의 국회 상정이 연기됐다. 지난 8일 법사위 전체 회의를 거쳐 법안을 본회의에 올리려다 전날 외국 대사들이 이상민 법사위원장을 찾아와 항의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 찰스 존 헤이 영국 대사 등은 "한국 로펌들의 이익만 보호하려는 것이며 FTA 취지에 반한다"고 항의했다. 이에 이 위원장이 "국회 논의를 더 진행해 보자"며 상정 안건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국내 법률 시장은 FTA에 따른 마지막 단계의 개방이 임박해 있다. 오는 7월 영국을 포함한 EU 로펌이, 내년 3월부터는 미국 로펌이 한국에서 합작 법인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외국 로펌도 국내 변호사를 고용해 일정 범위 안에서 국내 사건을 맡을 수 있어 국내 법률 시장에 경쟁 시대가 다가온 셈이다. 이를 앞두고 법무부가 마련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는 시장 개방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외국 로펌에는 경영권을 주지 않고 국내 로펌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미 FTA 협정엔 우리 정부가 합작 법인 지분율을 제한할 수 있게 돼 있어서 개정안 자체가 협정 위반은 아니다. 정부는 과거 독일 사례를 들어 이런 보호 장치를 두려 하고 있다. 독일은 1998년 별다른 조치 없이 법률 시장을 개방했다가 10대 로펌 중 8곳이 영·미계 로펌에 흡수 합병됐다. 그렇다고 지분율을 49%에 묶어버리면 어느 외국 로펌이 합작 법인을 만들겠다고 할지 의문이다.
국내 법률 시장은 머지않아 완전 개방되는 시기를 맞게 될 것이다. 보호가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개방하는 것이 변호사 비용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일 수 있는 기회다.
과거 한·미 FTA 협상에서 정부가 한국 영화 의무 상영 제도인 '스크린 쿼터'를 줄이자 영화인들은 "국산 영화를 말려 죽인다"며 극렬하게 반대했었다. 그러나 스크린 쿼터 단축은 한국 영화계에 독(毒)이 아니라 1000만 관객의 대작(大作)을 터뜨릴 수 있는 약(藥)이 됐다. 광고·보험 등 수많은 분야에서도 외국 법인이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사례는 거의 없다. 국내 로펌과 법무부는 방어적 자세를 버리고 전문성과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일부터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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