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지난 8일 저녁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전화로 북한의 4차 핵실험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결일불가(缺一不可)'란 새로운 표현을 썼다. '어느 것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①한반도 비핵화 실현 ②한반도 평화와 안정 수호 ③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3대 원칙을 강조하면서 덧붙인 말이다. 중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 이 표현을 쓴 것은 처음이다.
왕 부장의 말은 북한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위해 한반도의 평화·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포기할 순 없다는 얘기다. 중국이 '이전과 다른 강력한 대북 제재'를 강조하는 한·미·일의 요구에 끌려다니지 않고, 예전처럼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10일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의 평화·안정은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의미한다"며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에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겠지만, 결국 김정은 정권을 위태롭게 할 '고강도 채찍'은 이번에도 기대하지 말라는 중국의 기조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국제사회의 기대에 어긋난 중국의 이 같은 기조는 한·중 전화 협의 성사 과정부터 예고됐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 주요국 외교장관과 당일 통화를 했지만, 왕 부장과의 전화는 중국 측의 연기 요구로 두 차례 연기된 끝에 57시간 30분 만에 이뤄졌다. 양국은 전화 협의 내용도 통화가 끝난 지 3시간여가 지나서야 보도자료를 냈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 측과 공개할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양측의 '엇박자'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중국 외교부는 아예 왕 부장의 발언만 소개했다. "중국이 대북 압박을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등의 윤 장관 발언은 한마디도 공개하지 않았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대중 외교에 공을 들였지만, 그것이 정상 간의 개인적 관계에 머물 뿐 국가 차원의 원활한 전략적 소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한·중은 2013년 6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간 대화채널(고위급 전략대화)을 만들었지만, 딱 한 차례(2013년 11월) 가동됐다.
현재 중국은 자국의 반대에도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불쾌함 못지않게,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는 국제사회에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사회가 "중국이 잘못해 북한 핵실험을 막지 못했으니, 후속 대응도 모두 중국이 책임지라"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뤼차오(呂超)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관영 환구시보에 "중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미국의) 주장은 억지스러운 것"이라며 "미국이 북한을 적대시하는 태도를 유지했기 때문에 북핵 문제는 계속 악화했다"고 했다. 환구시보는 9일 사설에서 "중국은 그동안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를 성실하게 이행했고, 그 결과 북·중 관계가 멀어졌다"고도 했다.
중국이 대북 제재에 소극적인 것과 관련, "제재 수위를 높일 경우 북한이 '제2의 베트남'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1950~70년대 미국·프랑스와 싸운 베트남 공산당에 200억달러에 이르는 무기와 생활 물자 등을 공급했다. 그러나 베트남은 통일 직후 친소반중(親蘇反中) 노선을 걸으며 중국과 두 차례(1974·1979년) 전쟁을 치렀다. 핵을 보유한 북한이 창끝을 중국으로 돌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 내부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불만도 상당히 쌓여 있다. 자꾸 '사고'를 치는 김정은 정권 때문에 중국이 계속 곤란한 상황에 빠지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김흥규 교수는 "중국 역시 이번 사태 이후 반드시 북한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분위기"라며 "다만 아직은 대안들을 검토·수집하는 단계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쑨싱제(孫興傑) 지린대 교수는 "핵폭탄이 북한 땅에서 터져도 중국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며 "중국은 (4차 핵실험을 한) 북한에 대해 강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유엔 제재 외) 독자적 제재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롄구이(張璉瑰) 중앙당교 교수는 9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대다수 중국인은 미국과 북한이 핵 문제의 당사자이고, 중국은 단지 중재자라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북한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한 이상 중국도 (북핵의) 주요 피해자가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