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사우디와 이란 간 갈등의 핵심은 결국 수니·시아파의 종파(宗派) 대결이다. 두 나라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이후 갈등과 반목을 계속해 왔다. 당시 이란의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가 "와하비즘(사우디의 근본 이슬람주의)은 이단"이라며 이란의 혁명을 수출하겠다고 선언해 대결의 길로 들어섰다.

양국은 1987년 7월 발생한 사우디 메카 시위 사건 때 국교를 단절했다. 메카 성지를 순례하던 시아파 신도들이 반(反)사우디 왕정 시위를 벌였고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40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275명이 이란 시아파였다. 양국은 1988년부터 3년간 국교를 끊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2일(현지 시각) 저명한 시아파 지도자인 셰이크 님르 알님르를 사형시키자 이를 비판하는 이란 국민이 테헤란에 있는 사우디 대사관 앞으로 몰려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알님르의 사진을 붙인 팻말을 들고 사우디 국기를 불태웠으며 대사관을 향해 화염병을 던졌다. 사우디 정부는 3일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력, 국제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

전문가들은 이번 양국 갈등이 그때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는 "시위·폭동이 원인이었던 30년 전과 달리 이번엔 사우디 왕정이 심각하게 존립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사우디 위기의 가장 큰 배경은 이란의 부상이다. 수니파 국가들은 지난해 서방과 핵 협상을 타결한 이란이 경제 제재라는 올가미를 벗은 뒤 석유 수출 등을 통해 중동의 강국으로 떠오를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란은 인구가 8000만명으로 사우디(3000만명)를 압도하고, 군사력은 중동 지역 최강으로 평가된다. 원유 보유량도 사우디 못지않게 풍부하다.

미국이 중동에서 예전과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도 사우디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란이 테러를 지원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미국이 적극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사우디는 미국이란 방어벽이 약화돼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하고 있다.

사우디 왕정을 지탱했던 자금력도 흔들린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사우디 주요 유전 지대가 동부 지역에 몰려 있는 것도 문제다. 전체 인구의 15%인 사우디 시아파가 이곳에 몰려 있다. 이란 사주를 받은 시아파가 유전을 장악하면 사우디 왕가로선 치명적이다. 서정민 외대 교수는 "사우디는 이란 시아파의 국제적 영향력 차단과 국내 시아파 세력 단속을 정권 유지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중동 등 이슬람 국가들은 수니파와 시아파로 갈려 대진표를 형성하고 있다. 바레인과 수단, UAE 등은 4일(현지 시각) 이란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등 사우디 편들기를 명확히 했다.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 6개국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와 친사우디 성향의 아랍연맹(AL)은 '사우디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이란·이라크·레바논 헤즈볼라 등 시아파 진영은 사우디에 보복을 선언했다.

이런 갈등은 중동 전체의 격동과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와 이란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는 예멘과 시리아 내전에선 정부군·반군의 전투가 격화될 전망이다. 서방은 양국 갈등이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세력을 키워 반(反)IS·반(反)테러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라크에서 시아파 정부와 수니파 주민들 간 적대감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IS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로선 양국 갈등을 중재할 국가는 눈에 띄지 않는다. 냉전 땐 미국·소련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양국 행동을 제지할 힘이 없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란 갈등이 무력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가 미국 지원 없이 군사적 행동에 나서기 어렵고, 이란도 이제 막 국제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