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15년 전쯤 나는 자진하여 수학과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을 학문의 꽃으로 만들어준 수학에 이제 '생물학을 부탁해'라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생명의 수학'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10~20년 전에 수학이 생물학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오늘날 그 주장은 거의 모든 논쟁을 압도한다." 그날 나의 간언에 생물학으로 뛰어든 수학도는 달랑 한 명이었다.
'자연의 패턴'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 등으로 이미 우리 독자들에게 친숙한 수학 저술가 이언 스튜어트는 생물학 역사에서 일어난 다섯 차례 혁명에 수학이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이제 여섯 번째 혁명이 본격적으로 수학에 따라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훨씬 다양성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형태, 논리, 과정은 물론 패턴이 없는 듯 보이는 불확실성과 우연성도 수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생물학만이 갖고 있는 창발성(emergence)이 수학의 도전을 자극하리라 생각한다. 물리학과 화학은 1 더하기 1이 반드시 2여야 하는 학문이지만 생물학에서는 종종 1 더하기 1이 2보다 크다.
저자는 한 발짝 더 내딛는다. "21세기 수학의 지평은 생물학에 따라 확장될 것"이라고. 생물학이 수학의 도움으로 발달하는 것보다 수학이 생물학 덕택에 도약할 것이라는 말이다. 수학은 지금 우리가 고등학교 교실에서 배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이다. 매년 적어도 수학 논문 100만 편이 나오고 있고, 그들은 단순한 계산 문제를 풀어낸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담고 있다. 2015년에 가장 유행했던 은어 중 하나가 바로 '수포자'였다. 섣부른 원인 분석과 해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어쩌면 생물학이 수학포기자에 대한 새로운 길을 터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 성적 때문에 죽도록 고생했다.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대개 80점씩 받는 수학에서 30점을 넘긴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잃은 점수를 국어와 영어에서 만회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나이 서른이 넘어 20대 초반 하버드대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수학을 다시 공부하며 나는 알았다. 내가 수포자가 된 것은 대한민국의 수학 교육이 나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 또 한 번 수학 특강을 자원한다. 수학을 포기한 이 땅의 많은 젊음에 생물학을 권한다. 과학자는 되고 싶은데 수학에 자신이 없어 생물학을 택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당당히 생물학에 뛰어든 다음 수학을 품어라. 그러곤 전혀 새로운 '생물수학'을 만들어내라. 저자는 말한다. "생물학에서의 수학은 자신만의 특별한 성격이 있다." 생물학이 이끄는 21세기 수학은 수포자들의 변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