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내집 갖긴 어려워서 '내것 같은 집' 꾸며요

조선일보
  • 변희원 기자
    입력 2016.01.04 03:00 | 수정 2016.01.04 08:37

    - 새로운 패션이 된 '리빙'
    1인 가구, 전·월세 늘어나며 집 구매 대신 꾸미기에 관심… 투자에서 住居, 집 의미도 변해

    가로수길·강남역에 대형 매장
    '내 방의 품격' '은주의 방' 등 인테리어 예능·웹툰 인기

    집, 이제 소유가 아니라 향유이다. '내 집 갖기 힘들다'는 시대에 집에 대한 관심은 더 늘어나고 있다. 요리 열풍이 거센 한 해가 지나가자 이제 그 바람이 집에 불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동네에는 옷가게와 음식점 대신 리빙매장이 들어서고 있다. '쿡방'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그 자리를 '집방'이 파고든다. 음식 사진을 찍어올리는 '먹스타그램'('먹다'와 SNS '인스타그램'의 합성어)에 이어 '집스타그램'이 SNS에서 유행하고 있다.

    ◇잘나가는 동네엔 다 리빙숍이 있다?

    리빙의 유행은 인테리어 업체보다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업체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월세 형태의 주거가 많다 보니 공사 없이 집을 바꾸려는 노력이 늘어나는 것이다.

    의류 브랜드‘난닝구’는 지난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4층짜리 매장을 열면서 3~4층을 인테리어 소품, 침구와 같은 리빙 제품으로 채웠다. 인테리어를 주제로 한 웹툰‘은주의 방’(오른쪽 위)과 tvN에서 방영하는 인테리어 예능‘내 방의 품격’.
    의류 브랜드‘난닝구’는 지난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4층짜리 매장을 열면서 3~4층을 인테리어 소품, 침구와 같은 리빙 제품으로 채웠다. 인테리어를 주제로 한 웹툰‘은주의 방’(오른쪽 위)과 tvN에서 방영하는 인테리어 예능‘내 방의 품격’. /이덕훈 기자·CJ E&M
    대형 의류 매장과 레스토랑의 각축장이 돼버린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지난해 '자주(JAJU)'와 '네프호텔'과 같은 대형 리빙 매장이 들어섰다. 가로수길 중심에서 약간 비켜난 '세로수길'과 이태원 '경리단길'에는 인테리어 소품과 가구를 파는 작은 매장들이 생겨났다. 청년 유동 인구가 많은 서울 강남역 인근에도 일본 종합 리빙브랜드 무인양품과 니코앤드가 매장을 냈다. 가구와 인테리어가 더 이상 주부들의 취미생활이 아니란 얘기다.

    최근 생겨난 마트와 백화점에도 리빙 부문이 강화됐다. 이마트는 1000평 규모의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 라이프'를 지난해 문 연 일산 킨텍스점에서 선보였다. 현대백화점 분당판교점도 실내 원예부터 수입가구까지 파는 리빙 매장을 만들었다. 에르메스의 경우, 지난해 대표 매장인 '메종 에르메스'의 한 층을 책상, 소파, 옷장, 장식 소품 등 리빙 제품으로만 채웠다. 2013년부터 상승세였던 리빙 산업의 규모는 지난해 눈에 띄게 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가구업계 점유율 상위 5곳의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합계는 2조4756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 9221억원)보다 28.8% 증가했다.

    대중문화에 나타난 경향은 요리가 유행했을 때와 비슷하다. '집밥 백선생'과 '한식대첩'으로 쿡방 유행을 일으킨 CJ E&M은 지난달 23일부터 인테리어 예능인 '내 방의 품격'을 선보였다. 백종원, 최현석 같은 요리사들이 스타가 됐듯이 인테리어 전문가들도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는 이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독신 여성이 집을 꾸미는 과정을 만화로 풀어낸 웹툰 '은주의 방'은 네이버로부터 정식 연재 제안을 받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돈 버는 집'에서 '내가 살 집'으로

    소득 수준과 주거에 대한 관심은 비례한다. 인테리어 산업이 강한 북유럽은 해가 빨리 저무는 환경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주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한국의 경우에는 청년층의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최근 경제활동을 시작한 20~30대가 자력으로 집을 사는 것이 힘들어졌다. 전·월세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남의 집'을 '내 것 같은 집'으로 느끼기 위해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집을 소유한 사람에게도 집의 의미와 가치는 달라졌다. 출판사 알에치코리아 라이프스타일팀의 황혜정 팀장은 "한국에서 제일 많은 주거 형태인 아파트의 투자 가치가 떨어졌다. 집의 의미가 투자에서 주거로 옮아가자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간 생활을 유지하는 데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식주'라고 한다. 유통업계와 방송계에서는 "요리가 유행하자 그다음 순서는 인테리어라는 예측이 자연스레 나왔다"고 한다. '자주'를 내놓은 신세계인터내셔널의 김영 팀장은 "요리는 대부분 집에서 이뤄진다. 요리에 대한 관심이 자연히 요리를 하는 공간인 주방, 나아가서 가정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인 가구 증가가 요리뿐 아니라 리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구 수가 늘어나자 리빙 산업의 덩치가 커졌다.

    대중의 관심이 음식에서 주거로 옮아간다는 것은 감각이 확장됐다는 얘기다. 이탈리아 리빙브랜드 프레떼의 김진이 과장은 "침구와 향초 같은 품목 수요가 늘었다는 것이 눈에 띈다"고 했다. 패션이 시각을, 음식이 후각과 미각, 시각을 만족시켰다면 리빙은 여기에 촉각까지 더한다. '취향의 시대'를 맞은 지금, 리빙은 취향의 복합체나 다름없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한민희(34)씨는 "5년 전에는 잠깐 살고 말 전셋집을 공들여 꾸미지 않았다. 지금은 2년을 살 집에서도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인테리어는 또 하나의 패션이 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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